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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10년 전 오늘, 맥북 에어가 발표됐습니다.

”There’s something in the Air.”

직역하면 “공기 중에 뭔가가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 문구는 애플이 2008년 1월 15일에 열린 맥월드 키노트를 홍보할 때 썼던 문구입니다. 한국어로는 딱히 와 닿지 않지만, 이 문구는 결국 맥북 에어(Air)를 암시하는 홍보문구였었죠.

이 키노트는 고등학생이었던 제가 처음으로 직접 본 애플 키노트이기도 했습니다. 학교 인터넷이 느려서 라이브로는 보지 못하고 나중에 직접 내려받아서 봐야 했죠. 당시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는 그의 발표 스타일을 영원히 인식시키게 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바로 서류봉투에서 노트북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노트북은 두꺼웠기 때문에 서류 봉투 안에 노트북을 넣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맥북 에어는 그것을 해냈죠. 거기에 13인치 디스플레이와 풀사이즈 키보드 등을 넣어 기동성과 사용성을 모두 잡았다고 잡스는 자랑했습니다.

* 2010년형 맥북 에어의 유니바디 프레임

13인치 크기의 노트북을 이 정도로 얇고 가볍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애플의 새로운 유니바디 공법 덕분이었습니다. 기존의 노트북은 굵은 프레임에 얇은 외부 알루미늄 판을 더해 완성시키는 방식으로, 여러 개의 부품을 모아서 조립했기 때문에 견고함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맥북 에어는 하나의 통짜 알루미늄 블록을 깎아서 프레임과 외부 판을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부품이 제품 전체의 지지 구조를 완성했기 때문에 더 얇고 가벼운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더 견고한 섀시가 완성됐습니다. 이러한 유니바디 공법은 이후에 맥북과 맥북 프로뿐만 아니라, 아이맥, 그리고 아이폰에까지 두루 사용됐습니다.

* 첫 맥북 에어의 포트는 3.5mm 헤드폰 잭, USB 포트 하나, 그리고 마이크로 DVI 포트가 다였습니다. 마이크로 DVI는 후에 미니 디스플레이포트로 교체됩니다. (Stephen Hackett / MacStories)

하지만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해 여기까지 오기에는 많은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먼저, 기존의 코어 2 듀오 프로세서는 에어의 섀시에 넣을 수 없었기에 애플은 인텔에게 부탁해 소형화된 버전의 코어 2 듀오를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열에 상당히 민감했던 이 프로세서는 조금만 뜨거워진다 싶으면 두 코어 중 하나를 알아서 꺼버려서 성능을 현저히 저하시켰습니다. 나중에는 이 문제를 수정한 펌웨어가 나오긴 했지만요. 거기에 기본형에 들어가는 1.8인치 80GB 하드 드라이브(당시 기본형 아이팟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물건이었습니다)도 4,200 rpm이라는 속도를 자랑하며 에어의 느린 속도에 한몫했습니다. 거기에 포트가 USB 포트와 3.5mm 헤드폰 잭, 그리고 마이크로 DVI(이후에는 미니 디스플레이포트)로 한정된 문제도 있었죠.

하지만 맥북 에어는 결론적으로 향후 노트북이 어떤 디자인과 기능 셋을 가지게 될지 미리 볼 수 있는 노트북이었습니다. 당시까지의 두껍고 무거웠던 노트북은 이제 얇고 가벼운 디자인이 대세가 되었고, 경쟁사에서 맥북 에어의 디자인 콘셉트를 가져간 제품을 출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텔은 이러한 트렌드를 “울트라북”이라고 새롭게 칭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맥북 에어는 울트라북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2013년 이후에 추가된 터치스크린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맞지도 않거니와, 당시에는 맞았다 하더라도 애플이 굳이 인텔의 울트라북 인증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는 문제도 있겠죠)

그 외에도 맥북 에어가 다른 노트북의 디자인에 영향을 준 부분은 또 있습니다. 바로 SSD의 기본 탑재와 광학 미디어 제거인데요. 비록 첫 번째 맥북 에어는 기본적으로 SSD가 들어가진 않았지만, SSD를 기본 판매 모델에서 제공한 몇 안 되는 노트북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SSD가 아직 믿기 힘들 정도로 비쌌기 때문이었죠. (일례로, 64GB SSD가 들어간 맥북 에어의 고급형은 가격이 350만 원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맥북 프로는 물론이고 데스크톱인 아이맥 프로에까지 고용량 SSD를 탑재하게 되면서 성능 개선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광학 미디어(DVD)의 제거는 당시에는 나름 논란이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잡스는 광학 미디어를 사용하는 네 가지 케이스 중 세 가지(백업, 음악 굽기, 영화 보기)는 충분히 대체(각각 타임머신, 아이팟, 아이튠즈 영화)가 가능하며, 유일한 문제는 소프트웨어 설치라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 네트워크 내의 광학 드라이브를 가진 다른 맥이나 윈도우 PC를 활용해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수 있는 리모트 디스크 기능이 탑재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은 맥 앱 스토어와 인터넷 다운로드로 필요가 없어진 상태입니다.

* 2010년형 맥북 에어에는 기존의 13인치에 11인치 모델(오른쪽)이 추가됐습니다. (AnandTech)

2008년의 맥북 에어 디자인은 문제가 많았기에, 애플은 이를 한 단계 진화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새로운 디자인이 바로 2010년형입니다. 이 디자인은 아예 내부를 SSD로만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설계를 적용해 기존 2008년형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며, 이 설계 덕분에 이제 두 개의 USB 포트를 갖출 수 있게 됐습니다. SSD와 더불어 인텔의 프로세서 기술도 많이 따라잡게 되면서 기존의 성능 문제는 웬만큼 해결이 됐으며, 11인치 모델도 같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2008년형의 정신 나간 가격에서 나름 경쟁적인 가격을 갖추게 되면서 순식간에 애플의 맥북 라인업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으로 등극했습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IT 리뷰어인 월트 모스버그도 맥북 에어를 최고의 노트북이라고 치켜세울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맥북 에어는 계속해서 팔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11인치는 이미 단종됐으며, 13인치도 2015년에 나온 사양을 거의 그대로 판매하고 있는 시한부 인생입니다. 심지어 지금 나오는 13인치 맥북 프로가 13인치 에어와 무게를 맞췄으며, 전체적인 면적은 더 작아졌습니다. 그동안의 기술의 발전 덕입니다. 하지만 10년 전 맥북 에어가 이뤄낸 기술적 성과는 지금의 맥 제품군, 그리고 나아가 다른 애플 제품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필자: 쿠도군 (KudoKun)

컴퓨터 공학과 출신이지만 글쓰기가 더 편한 변종입니다. 더기어의 인턴 기자로 활동했었으며, KudoCast의 호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