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된 아이맥: 인터넷 시대의 선구자에서부터 올인원 워크스테이션이 되기까지
때는 1998년 5월 6일이다. 10개월 전에 애플은 NeXT와 함께 스티브 잡스를 다시 애플로 데리고 왔다. 임시 CEO로 취직한 잡스는 춘추전국시대나 다름없었던 복잡한 제품군을 모두 쳐내고, 제품군 전체를 프로용과 일반 소비자용, 그리고 포터블과 데스크톱으로 나누는 새로운 제품 라인업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당시에는 가장 인기를 끌게 될 일반 소비자용 데스크톱을 이날 발표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아이맥(iMac)이었다.
이번 6일, 아이맥은 발표 20주년을 맞게 된다. 현재 애플 라인업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의 단일 기종으로 남아있는 아이맥의 역사를 크게 다섯 개의 아이맥 모델로 돌아보도록 하자.
아이맥 G3: 새로운 애플의 시작
잡스가 이날 발표한 아이맥 G3는 어떻게 보면 14년 전에 선보였던 첫 매킨토시의 리메이크였다. 아이맥은 그때의 매킨토시처럼 다시 디스플레이와 맥 본체를 합친 올인원 디자인을 부활시켰다. 이 디자인은 사용을 시작하기 전에 각종 케이블 연결 등의 셋업 과정을 매우 간소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애플은 이 부분을 광고에 십분 활용했다.
하지만 그 기본적 개념만 가져왔을 뿐, 나머지는 완전히 달랐다. 매킨토시가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베이지색의 케이스는 이제 밝은 파란색(“본다이 블루”)의 반투명 플라스틱 케이스로 바뀌었고, 이 케이스는 아이맥 G3의 판매 기간 동안 총 13가지에 달하는 색으로 나왔다. 이 플라스틱 케이스는 애플(잡스)이 원하는 색상과 투명도를 맞추는 게 상당히 까다로웠다. 잡스는 아이맥을 처음 개발하기 시작할 당시에는 이런 제조 기술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애플은 당시에 이 공법을 개발하는 데만 6개월을 썼고, 디자이너를 공장에 보내 두 달가량 노숙을 하기도 했다. 이 디자이너가 바로 지금까지도 애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 최고 디자인 책임자 조니 아이브였고, 이 공장은 한국의 LG전자였다.
내부에는 PowerPC G3 프로세서를 장착했고, 기존의 포트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등을 다 없애고 당시에는 아직 새로웠던 USB를 전면적으로 채용했다. (애플의 기존 포트를 날리는 소질이 최근에 생긴 것만은 아니다) 이에 대한 반발은 거셌지만, 이후 8월에 출시해 1998년이 끝날 때까지 80만 대를 판매하면서 여기에 맞춘 USB 액세서리가 대거 출시되는 계기가 되었다. 80만 대라는 판매 수치는 당시 애플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판매된 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아이맥 G4: 각자의 기능에 철저한 디자인
아이맥 G4를 디자인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디스플레이였다. 당시에 대중화되기 시작한 LCD 디스플레이의 얇은 두께를 애플은 새로운 아이맥에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맥 본체와 디스플레이를 하나의 제품으로 제공해야 하는 올인원의 특성상, 그것이 당시 기술로는 쉽지 않았다. 특히, 당시에는 본체 케이스에 DVD 드라이브를 넣을 수가 없었다. 그냥 디스크를 넣으면 스르륵 들어가는 슬롯 로딩 방식 드라이브가 아직 DVD로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
그렇게 애플이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각자의 기능에 철저하자”라는 것이었다. 먼저, 받침대에 맥 본체를 넣는다. 그리고 거기에 본체와 디스플레이를 연결하는 케이블이 내장된 받침대를 통해 얇은 LCD 디스플레이를 연결한다. 이렇게 또 다른 독창적인 디자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빵맥’, 해외에서는 ‘해바라기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기술적 한계를 새로운 디자인 요소로 활용한 예라 할 수 있겠다.
본체와 디스플레이를 분리한 디자인은 어느 정도의 타협은 봐야 했다. 그 일례로 스피커가 있는데, 본체 부분 받침대의 공간이 좁아 결국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모노 스피커를 써야 했다. 대신, 애플은 하만 카돈의 튜닝을 거친 애플 프로 스피커를 동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만 카돈은 2016년에 삼성이 인수했다)
아이맥 G4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뉴욕의 현대 미술관(MoMA)에 전시될 정도로 영향이 컸다. 애플은 이후 아이맥 G5 때는 디스플레이와 본체를 모두 하나의 케이스에 넣을 수 있을 만큼의 기술력을 확보했고, 그 이후로는 지금 우리가 아는 아이맥 디자인의 틀이 잡히게 됐다.
인텔 아이맥: 맥의 새로운 시대를 열다
2005년 WWDC에서, 애플은 충격적인 발표를 한다. 바로 맥의 프로세서 플랫폼을 기존의 PowerPC에서 인텔로 이주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플랫폼 이주는 애플의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뿐만 아니라 개발자들의 새로운 바이너리 지원도 필요한 장기적인 작업이었다. 이를 감안해 애플은 1년 뒤인 2006년 여름부터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맥 제품군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애플은 그 해 1월부터 이주 작업을 시작하면서 개발자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그 첫 번째 제품은? 물론 아이맥이었다. PowerPC G5 대신 인텔의 코어 듀오 프로세서를 탑재한 새로운 아이맥은 G5 대비 2~3배의 성능 향상을 보였다. 애플은 이렇게 순식간에 더 빨라진 인텔 아이맥을 기존 G5와 같은 가격에 판매하겠다고 밝히면서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특히 고작 몇 달 전(실제로 인텔 아이맥 출시 단 3개월 전에 아이맥 G5의 마이너 업데이트 모델이 발표됐었다)에 아이맥 G5를 산 사용자들은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셈이었다.
애플은 아이맥을 시작으로 맥 라인업을 조금씩 인텔 프로세서로 이주했으며, 그해 8월에 파워맥 G5를 새 단장한 맥 프로를 발표하면서 이주 작업을 마무리지었다. 이 대대적인 작업의 신호탄이 아이맥이었다는 것은 애플 입장에서 얼마나 아이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시사하는 부분이다.
아이맥 레티나 5K 디스플레이: 최초의 5K 해상도 상용화
2010년, 애플은 기존의 해상도를 네 배 늘린 아이폰 4를 발표하며 “레티나 디스플레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간단히 말하면 기존 기기의 해상도를 가로세로 두 배씩, 총 네 배를 뻥튀기한 후, 소프트웨어의 리소스 크기를 네 배씩 높여서 더욱 선명한 화면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2년 후인 2012년에는 아이패드에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장착했으며, 그로부터 3개월 뒤에는 15인치 맥북 프로에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달아버렸다. 이때 애플의 공격적인 “레티나화”에 모두가 놀라긴 했지만, 설마 당시 27인치라는 거대한 화면 크기를 가진 아이맥에도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달까...라고 의문을 표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후이자 맥의 탄생 30주년을 맞은 2014년, 애플은 27인치 아이맥에 정말로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넣었다. 해상도는 무려 5120x2880. 27인치 디스플레이에 무려 1,470만 개의 화소가 박혀 있는 셈이었다. 애플은 이 디스플레이가 달린 아이맥을 2,499달러에 내놓았다. 당시 델이 발표한 같은 크기, 같은 해상도의 디스플레이가 같은 가격이었지만, 컴퓨터 본체는 빠진 가격이었다.
애플은 이 디스플레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부분을 다시 설계해야 했다. 대표적인 예가 디스플레이의 특정 화소가 어떤 색을 내야 하는지 신호를 보내는 새로운 타이밍 컨트롤러를 개발해야 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5K 해상도를 제어할 수 있는 컨트롤러가 존재하기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맥 레티나 5K 디스플레이는 맥 제품군에서 기묘한 위치를 점했다. 라인업 자체는 일반 소비자용이었지만, 스펙은 프로 제품군 못지 않았다. 심지어 맥 프로도 5K 해상도는 디스플레이포트 규격의 한계로 지원이 불가능했다. 사실상 2016년에 새로운 맥북 프로가 등장할 때까지는 이 아이맥이 맥 제품군에서는 유일하게 5K 해상도를 구동할 수 있는 맥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아이맥이 공개됐을 당시 “맥 프로를 팔고 아이맥으로 넘어가야 하나”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보이곤 했다.
이 때부터 애플은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맥을 기반으로 프로용 제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아이맥 프로: “Make Pros Great Again”
* 언더케이지
그로부터 3년 뒤, 2017년의 맥 라인업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특히 큰 문제는 바로 프로 라인업이었다. 2016년에 출시된 맥북 프로는 기존 단자 삭제와 새로운 키보드의 내구도 문제 때문에 말썽이었다. 하지만 데스크톱은 상황이 더 심각했는데, 2013년에 혜성 같이 등장한 연탄 맥 프로는 4년 동안 어떠한 업데이트도 없었으며, 애플이 프로 시장을 버렸다는 예측도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해 6월 프로를 위한 비장의 무기가 등장했으니, 바로 아이맥 프로였다. 외관상으로만 보면 27인치 아이맥 레티나 5K 디스플레이 모델과 같은 케이스를 사용했다. 다만 색은 모두의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 새까만 스페이스 그레이로 재도장했다. 여기에 매직 키보드와 매직 마우스, 매직 트랙패드 모두 스페이스 그레이로 깔맞춤 됐다. (아이맥 프로의 출시 직후에는 이 액세서리들이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결국 애플이 나중에 별매하면서 이러한 중고 시장은 깡그리 죽어버렸지만)
아이맥 프로가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당연히 내장이었다. 최대 18 코어의 인텔 제온 CPU부터 최대 128GB의 ECC 메모리, 최대 4TB SSD, 그리고 최대 11 테라플롭의 성능을 발휘하는 AMD 베가 프로 GPU까지 모두 워크스테이션급의 부품으로 갈아 끼웠다. 그리고 이 새로운 내장으로 인해 발생할 엄청난 열을 제어하기 위해 냉각 시스템도 완전히 새로 만들어졌다. 기존에 한 개였던 팬은 이제 거대한 두 개로 바뀌었고, 흡기구나 배출구도 훨씬 커졌다. 거기에 새로운 T2 보조 프로세서는 SSD의 하드웨어 암호화나 보안 부팅 등의 추가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프로용 워크스테이션의 덕목이라 하는 내부 확장에서는 상당히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먼저, 일반 27인치 아이맥에서는 후면의 도어를 열면 쉽게 메모리를 자가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지만, 아이맥 프로는 쿨링 시스템의 변경으로 인해 내부 구조가 바뀌면서 상당히 힘들어졌다. (대신 애플 스토어나 공인 서비스 센터에 맡기면 메모리를 업그레이드해줄 수 있다) 그 외의 부품은 당연히 보증기간을 깨지 않는 한에는 업그레이드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1984년의 첫 매킨토시 때부터 맥 안에 들어가는 부품의 모든 부분을 제어하고 싶은 애플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이맥 프로는 프로용 맥의 자연스러운 진화였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맥 프로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맥 프로도 내부형 확장보다는 네 개의 썬더볼트 3 단자를 활용한 외부형 확장에 더욱 신경을 쓴 모습이다. 애플은 여전히 이러한 확장이 워크스테이션의 미래라고 믿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맞는지 틀리는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맥 라인업에서 가장 아이러니인 것은 일반 소비자용으로 출발한 아이맥이 지금은 라인업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빠른 성능을 가진 맥이 됐다는 점이다. 지난 20년간 있었던 아이맥의 진화 과정을 가장 잘 요약한 제품이 아닐까.
필자: 쿠도군 (KudoKun) 컴퓨터 공학과 출신이지만 글쓰기가 더 편한 변종입니다. 더기어의 인턴 기자로 활동했었으며, KudoCast의 호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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