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애플 밴드
곧 애플 이벤트이다. 새로운 아이폰이 나올 것이고, 새로운 애플 워치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번 이벤트에 나오지 않을 기기다. 사실 애플이라면 내놓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하지만 내놓으면 매우 좋을 것 같은 기기다.
애플 워치를 차고 다니면서, 활동 앱에 많은 집착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애플 활동 앱은 매우 다양한 피트니스 플랫폼 중에서 단연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고 생각한다. 움직이기, 운동하기, 서기 세 개의 개념으로 하루의 목표량을 쉽게 알고 채울 수 있고, 그 목표치를 걸음 수 대신 다른 운동으로도 채울 수 있는 칼로리 수치로 지정한 건 애플 활동 앱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 플랫폼을 이용하려면 일단 애플 워치를 차야 한다. 사람들 중에는 시계를 차는 것이 거추장스럽다고 차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기존에 차던 다른 시계를 차면서 애플의 활동 앱을 사용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후자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시계를 차고 다녔던 이른바 "시계 덕후"였다. 요즘도 애플 워치를 차고 다니긴 하지만, 일반 시계, 특히 기계식 시계에도 관심이 많다. 집에도 기계식 시계를 두 점 정도 소유하고 있으나, 활동 링을 채우기 위해 애플 워치를 찰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결국 그 시계들은 구석에서 먼지를 마시고 있다. 뭐 자주 손질하긴 하지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이리라 본다. 그래서 돌아다니다 보면 피트니스 밴드를 찬 사람들을 보게 된다. 대부분은 샤오미의 미 밴드를 차고 다니는데, 이 제품도 1세대가 나왔을 때는 상태 LED만 있더니 나중에는 시간까지 보여주겠다고 기기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든 생각이 하나 있었다. "애플이 피트니스 밴드를 만든다면 어떨까?" 고작 3~4년 전의 애플이었어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당시 애플은 애플 워치의 판매량을 늘리는데 집중해야 했고, 거기에 애플 워치의 영역을 침범할 피트니스 밴드를 개발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애플은 하드웨어보다는 서비스에 집중하는 모양새인 데다가, 애플의 웨어러블 사업은 애플 워치뿐만 아니라 에어팟 등의 다른 기기도 매출 증대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여기에 피트니스 밴드를 추가한다면? 위에 말한 이유로 애플 워치를 내키지 않아 하는 소비자들에게까지 웨어러블 기기를 판매할 수 있을뿐더러, 애플의 활동 플랫폼의 사용자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애플이 앞으로 활동 앱을 발전시킬 데이터를 더 많이 수집할 수 있는 발판이 될 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부르길 이 "애플 밴드"에는 어떤 기능이 탑재되어야 할까? 간단하게 정리해봤다.
디자인
최대한 미니멀한 디자인을 유지해야 한다. 상술한 대로 샤오미의 미 밴드처럼 들어갈 기능에 욕심을 부리느라 크고 두꺼워지면 안 된다. 만약에 더 많은 기능을 원하는 소비자가 있다면, 애플 워치라는 좋은 대안이 있으니까 말이다.
크기는 팔찌 정도의 사이즈가 적당할 것 같다. 실제 존재하는 제품 중에서는 핏빗 플렉스 정도가 가장 이상적이다. 플렉스가 매우 작은 크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디스플레이의 부재다. 애플 밴드도 디스플레이 대신, LED 어레이로 최소한의 정보만 표시하도록 한다. 대표적으로, 세 개의 활동 링 진행 사항 정도만.
애플 워치가 그랬던 것처럼, 애플 밴드도 쉽게 줄을 교체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애플 워치처럼 에르메스 가죽 줄 이런 건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기능
애플 밴드의 기능은 활동 기능 자체에만 집중하도록 설계된다. 피트니스 밴드이니만큼 큰 욕심을 내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 약간 욕심을 내서 연결된 아이폰에 전화가 올 때 알려주는 간단한 알림 정도는 있어도 좋을 거 같지만, 문자 등의 알림은 과감하게 버리는 게 낫다.
- 운동 기능 조정은 두 가지 방법으로 한다. 먼저, 아이폰에서 시작하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밴드에 있는 전용 운동 시작 키를 누르는 방법이 있다. 아이폰에서 시작할 때는 애플 워치처럼 운동의 종류를 선택해서 시작할 수 있고, 밴드에서 시작할 때는 운동 종료 후 아이폰에서 운동 종류를 선택할 수 있다. 이러면 아이폰이 수집된 데이터를 가지고 알고리즘을 적용해 소비 칼로리 등의 정보를 계산한다.
- 자체적으로 센서 데이터를 계산하고 활동 링에 반영하는 애플 워치와 달리, 애플 밴드는 센서 데이터를 아이폰으로 보내고 아이폰이 대신 계산한 활동 데이터를 다시 밴드로 되돌려 표시하는 방식으로 한다. 반영 속도는 좀 느릴 수 있으나, 밴드가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계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배터리 사용 시간에 더 유리해진다.
- 애플 워치보다 아이폰에 더욱 의존적인 하드웨어 특성상, GPS는 탑재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자체 운동 시작 키가 있기 때문에 폰을 들고 다니지 않더라도 운동을 실시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는 예전 1세대 애플 워치가 그랬듯이 내부 센서로 대략적 거리를 측정하는 편이 배터리에도 더 낫다.
- 정확한 운동 데이터 수집을 위해 심박 센서는 당연히 탑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핏빗 플렉스의 가장 큰 약점이라 생각하는 부분.
- 위에 전력 효율을 위해 희생한 부분이 많은데, 배터리 사용 시간은 어떨까? 1회 충전 시 최소 1주일은 가야 한다고 본다. 충전은 애플 워치가 그렇듯이 자석으로 붙지만, 무선 대신 접촉 단자 방식이 좋을 거 같다. 하드웨어의 크기상 라이트닝 단자나 무선 충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 1주일이나 가는 만큼, 수면 추적 기능도 당연히 들어가면 좋겠다. 현재 루머로 도는 애플 워치의 수면 추적 기능에서 한 단계 나아가, 아예 자동으로 잠에 든 것을 인식하는 게 더 좋을 거 같다.
- 아이폰 없이 운동할 상황을 대비해, 음악과 팟캐스트를 저장할 수 있는 저용량(한 8GB 정도)의 플래시 메모리가 탑재되는 모델이 고급형으로 있어도 될 것 같다. 아마 애플 뮤직이나 애플 팟캐스트만 동기화할 수 있고, 자체적인 블루투스 페어링 인터페이스가 없는 이상 연결은 W1/H1 탑재 이어폰(에어팟, 파워비츠 프로 등) 등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본형은 내장 메모리가 빠진 버전이어야 할 것이다.
- 이미 여러 대의 애플 워치를 가지고 있을 때처럼, 애플 워치, 혹은 다른 애플 밴드에서 바꿔 찰 때에는 활동 데이터가 아이폰을 통해서 동기화돼야 한다.
- 애플 워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밴드를 살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동시에 둘을 모두 찰 수 있기 때문. 이 모드에서는 운동 시 밴드가 센서 데이터의 수집을 담당하게 되고, 애플 워치는 데이터 연산이나 GPS 기록 등을 담당한다. 이렇게 하면 장시간 운동을 하더라도 워치의 배터리 소모 수준이 최소화된다. 아이폰을 가지고 뛴다면 아이폰이 GPS 기록을 담당하게 되므로 워치가 배터리를 소모할 일은 거의 없게 된다.
- 이 모든 것의 가격은? $129부터. 약 15만 원.
결국은 판타지
사실 이 "애플 밴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루머에도 걸린 적이 없었다. 예전에는 "당연히 만들 리가 없지..."라고 생각하고 포기했었다. 하지만 애플의 포커스가 바뀌고 있는 요즘, 안될 건 없지 않을까?라고 또 행복 회로를 돌려본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 애플 페이 들어오는 것보다 더 답 없는 행복 회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