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소식/Mac

맥 소프트웨어 시장의 특성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iOS의 특성을 강요하는 애플의 폐단

오늘 메일로 BusyCal 2.0 출시 안내 메일을 받았습니다. 캘린더(Calendar)와 미리 알림(Reminders)을 프로그램 한 군데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일정 관리 프로그램으로 맥 커뮤니티에서는 스팀팩(뽕?) 맞은 iCal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BusyCal 2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Busycal 버전 1을 구매한 사용자나 이번에 새로 버전 2를 구매하는 사용자나 모두 29.99불을 지불해야 한다고 합니다. 원래 49.99불에 팔려고 했던 것을 기존 사용자들을 배려해 선심쓰듯 29.99불에 한시적으로 판매한다고 설명하는데 솔직히 이전 버전을 구매한 사용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가격이 썩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기존에 수십불씩이나 써가며 프로그램을 구매했는데 이번에 새로 구입하는 사람이나 똑같은 가격이 내야 한다니 억울한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BusyCal 1.X 버전을 구매한 지 한 두 달밖에 안된 분들은 이번 메이저 업데이트가 날벼락처럼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상한 가격 정책을 BusyCal 개발사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게 함정입니다. 전통적인 맥 소프트웨어 판매 체계를 뒤집고 iOS용 앱스토어 체계를 그대로 도입한 애플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맥 개발자들이 어떤 상황에 있고 어떤 딜레마를 겪고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

30세 양철수씨는 5년 전에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M3를 설립하고 맥용 일기장 '두기'의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두기 1.0 버전은 기능 미비로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이듬해 기능을 보강해 출시한 두기 2.0이 공전의 히트를 치는 바람에 M3사에 제법 많은 수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또 다시 1년이 흘러 양철수씨는 두기 3.0 버전을 10불에 출시했는데 기존 두기 사용자들에게는 5불만 받고 업그레이드 해주고, 새로 구매하는 사용자들에게는 10불을 다 받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양철수씨는 기존 사용자층의 이탈을 막는 동시에 새로 두기를 구매하는 쪽과 기존에 두기를 사용하는 쪽 모두에게서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기존 구매자 입장에서도 손에 익은 프로그램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업그레이드 할 수 있으니 큰 불만없이 5불을 지불합니다.

이게 맥 앱스토어가 들어서기 전까지의 '전통적인 맥 소프트웨어 생태계'였습니다. 이 생태계에서는 한쪽이 손해 보는 것 없이 모두 윈-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1년 6개월 전 애플은 '맥 앱스토어'라고 불리는 커다란 소프트웨어 백화점을 열고 개발자들과 사용자들을 유혹합니다. 그런데 양철수씨의 눈에는 백화점에 상품을 등록하고 판매하는 방식이 영 깨름칙합니다. 판매자가 지켜야 할 판매 수칙과 가이드라인도 수두룩한데..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이 개발자 저 개발자 다 맥 앱스토어로 몰려가고, 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돈이 몰리니 양철수씨도 대세에 따라 두기 3.0을 맥 앱스토어에 올리게 됩니다.

기존에 M3 홈페이지에서 두기 3.0을 구매한 사용자들과의 형평성을 위해 맥 앱스토어에도 두기 3.0을 10불에 판매합니다.

문제 1. 이때 M3 홈페이지를 통해서 두기 3.0을 구입한 사람들은 맥 앱스토어 버전으로 (무상으로) 갈아탈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전무합니다. M3 웹사이트에서 판매된 버전을 맥 앱스토어 버전으로 이전해주고 싶어도 양철수씨에게는 그럴 능력도 없고 방법도 없습니다. 유일한 방법인 리딤코드 배포도 개발자가 맥 앱스토어에 새 버전 업데이트할 때 리딤코드를 50개밖에 못 받기 때문에 기존 사용자들에게 나눠주기엔 택도 없이 부족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양철수씨 입장에서는 M3 웹사이트 판매체계와 맥 앱스토어에서 판매 체계를 계속 병행해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

시간이 흘러 두기 3.0 판매세가 둔화되고 월수입이 줄어들 떄 쯤 양철수씨는 일기장에 사진을 여러 장 첨부할 수 있는 기능과, 그날의 날씨를 자동으로 입력해주는 기능을 추가한 회심의 '두기 4.0'을 출시합니다! 그리고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M3 웹사이트를 통해 두기를 구매한 사람들에게는 두기 4.0을 5불에 구매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 정책을 마련합니다.

근데 맥 앱스토어에서는 양철수씨 마음대로 이런 가격 정책을 시행할 수 없습니다. 아예 이런 가격 이원화 시스템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 2. 그럼 기존에 맥 앱스토어에 등록된 두기 3을 두기 4로 교체하면 되지 않냐구요? 그럼 맥 앱스토어상에서 하나의 앱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기존 사용자들이 무료로 두기 4.0으로 업데이트를 받게되고 양철수씨에게는 한푼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개발 비용을 보전하고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M3 CEO 양철수씨는 어쩔 수 없이 기존 두기 3.0과 별도로 두기 4.0을 맥 앱스토어에 등록해야 합니다. 

문제 3.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M3 웹사이트를 통해서 기존 버전을 구매한 사람들은 5불만 주면 두기 4.0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데, 맥 앱스토어에서 구매한 사람은 10불을 몽땅 지불해야 합니다. 프로그램은 동일한데 구매처가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문제 4. 양철수씨가 아차싶어 맥 앱스토어에 올린 두기 4.0의 가격을 급히 5불로 낮춥니다. 그럼 기존 버전 사용자가 이전처럼 5불 수준으로 두기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지만, 새로운 구매자도 단돈 5불만 지불하면 되니 여전히 차별화된 가격 정책을 시행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M3 웹사이트의 판매 정책에 손을 대야 합니다. 또 두기의 평균 판매 단가가 떨어지니 회사에 들어오는 수익도 감소하게 됩니다.

~~

아직 양철수씨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서 양철수씨가 두기 4.0을 맥 앱스토어에 새로 등록하면서 두기 3.0을 맥 앱스토어에서 내리지 않았는데, 

문제 5. 이때 두기 3.0의 값은 얼마로 책정해야 할까요? 아예 무료로 배포할 수도 없고 두기 4.0과 똑같이 10불을 다 받을 수도 없습니다. 두기 4.0을 5불로 낮춘 상황이라면 두기 3.0의 가격을 매기기가 더욱 애매해집니다.

저렴하게 1~3불 정도만 받아도 될 지 모른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프로그램을 돈 받고 판매한다는 것은 그 프로그램을 암묵적으로 계속 유지 보수해주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고객이 보낸 문의 메일과 개발자 사이트 QA 포럼에 올라오는 문의 글에도 대응을 해야하고 막 출시한 두기 4.0의 버그들을 잡는데도 자원을 집중해야 합니다. 또 언젠가 두기 5, 6, 7도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두기 3.0 보수해주는데 자원을 할애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

결국 어떤식으로든 '수익을 내야 하는' M3 소프트웨어의 CEO 양철수씨(=개발자)가 내린 최선의 결론은 

1. 두기 4.0을 M3 웹사이트에서 판매하지 않고 오로지 맥 앱스토어에서 판매하고

2. 두기 3.0을 맥 앱스토어에서 내리는 동시에 두기 4.0만 등록하며,

3. 모든 사람들이 두기 4.0을 맥 앱스토어에서 기존 판매 가격의 절반 수준(10불 → 5불)에 구입할 수 있게 해줍니다.

4. 그리고 양철수씨는 M3 웹사이트에 '안내문스럽기도하고 사과글스럽기도한 공지'를 게재합니다.

'맥 앱스토어의 기능적인 한계 때문에 새 구매자와 기존 구매자들간의 분별할 수 없으니 기존 구매자들이 이해를 좀 해 달라. 어차피 M3 웹사이트에서도 5불 받고 업데이트 해주려고 했기 때문에 기존 구매자 입장에서는 달라질게 없다. (단지 배가 조금 아플 뿐...) 마찬가지로 맥 앱스토어에 두기 3.0과 4.0이 공존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3.0를 내려야 한다. 지원을 더 해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또, 새 구매자들에게 10불을 모두 받고 싶지만, 기존 사용자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절반만 받아야 하니 우리로도 손해가 크다. 새 버전 출시 직후가 프로그램이 젤 잘 팔리는 시기인데 원래 받던 가격의 절반 밖에 못받으니 우리도 속이 탄다.'

~~ 

일단 여기까지가 현재 맥 소프트웨어 생태계 흐름을 설명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개발자나 소비자가 아닌 애플이 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앞으로 두기 4의 후속으로 두기 5가 출시되면 두 버전을 기존 두기 4 구매자들이 두기 5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2. 또 새 버전이 등록되었다 하더라도  바로 기존 버전을 없애지 않고 맥 앱스토어에서 이 두 버전을 모두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존 창구를 유지해 놔야 두기 4에 긴급 업데이트가 필요한 경우 이를 개발자가 수정해 줄 수 있습니다. 지금 체계에서는 새 버전을 출시하면 기존 버전을 맥 앱스토어에서 완전히 내려야 하는데 이런 경우 버그가 수정된 버전을 배포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집니다.

2. 두기 5를 새로 구매하려고 하는 사람들은(즉, 두기 4 구매 내역이 없는 사람들은) 두기 4 소개 페이지를 클릭하더라도 두기 5 판매 페이지로 자동으로 이동시켜주는 기능 정도는 최소한 갖춰놓아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위에서 소개한 문제 2,3,4,5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애플이 맥 앱스토어에 샌드박싱 정책을 도입한 걸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최소한 맥의 보안성과 안정성을 향상시키는 대외적으로 그럴듯한 목적이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정말 필요한 정책(기존 사용자들을 위한 업그레이드 옵션 제공)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구현 가능하고, 또 무료와 1~2불짜리 캐쥬얼앱이 주류인 iOS 앱스토어와 앱 하나에 수~수십불 씩 하는 맥 앱스토어와는 분명히 환경이 다른데 애플은 아무 대책 마련없이 수수방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스템의 미비로 인한 손실은 개발자와 구매자들에게 그대로 전가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새로 구매하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기존 구매자'들과 동일한 가격을 지불하면되니 당장은 불만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맥을 1~2년 쓰고 그만 쓰실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또다시 새 버전이 출시되면 지금 기존 구매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그대로 반복될 것입니다. 

기존 맥 소프트웨어 시장의 특성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iOS의 특성을 강요하는 것이 건강한 Back to the Mac 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은 애플의 시행 착오라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애플 맥 앱 스토어가 좀 더 유연하고 유동적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고대해 봅니다.

ONE™



관련글
• 앱 심사 받는데 무려 27일? 맥용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애플에 뿔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