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GAAD
5월 18일인 오늘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얻어내기 위해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오늘 5월 18일 목요일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Global Accessibility Awareness Day인데요, 한국어로 직역해보자면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 정도가 될 수 있겠습니다. 여전히 이게 무슨 말인가 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여기서 말하는 접근성이라는 단어는 모든 사람이 여러 서비스의 혜택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무언가에 그렇지 못한 사람이 접근하기 어렵다면 이는 접근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접근성이 고려되지 않은 것들이 매우 많고, 이런 접근성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2015년부터 매년 5월 셋째주 목요일을 Global Accessibility Awareness Day로 지정했습니다.
현대 인간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주저없이 컴퓨터를 꼽을 것입니다. 컴퓨터는 그 자체로 사람들의 삶의 질을 올려줬을 뿐만 아니라 각종 산업 현장에서 활용되면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능력을 끌어올려줬습니다. 개인용 PC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더 나아가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컴퓨터는 사람들에게 더 밀접하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일반인 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만약 컴퓨터에서 접근성이 완전히 무시된다면 장애인들은 단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현대 인간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물건을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많은 IT 기업들은 이미 이 분야에 대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닥터몰라나 백투더맥의 독자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 보셨을 운영체제의 ‘손쉬운 사용’ 항목이 바로 이 접근성에 관련된 항목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스마트폰 시장을 여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애플은 역시 이런 휴대용 컴퓨터에서 접근성을 높이는 데 역시 선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손쉬운 사용’에서 제공되는 여러 가지 기능들은 실제로 시각, 청각 장애인들이 아이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장 마이크와 연동되는 실시간 듣기 기능이나 화면의 내용을 읽어주는 보이스 오버 기능, 단일 버튼을 여러 번 누르는 방식으로 화면의 요소를 탐색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 주는 스위치 제어 기능 등은 시청각 장애인은 물론 운동능력이 크게 제한되는 마비 환자들도 아이폰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시리와 같은 음성비서 역시 시각 장애인들의 아이폰 접근성을 높여준 기능 중 하나지요.
애플 홈페이지.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테크놀로지가 가장 강력한 테크놀로지입니다.
사진 : 애플
애플은 Global Accessibility Awareness Day를 맞아 홈페이지의 메인에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테크놀로지가 가장 강력한 테크놀로지입니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애플 제품들의 접근성을 높여주는 손쉬운 사용 기능을 홍보하는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링크). 이 페이지에서는 맥, 애플워치,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의 주력 제품군들에 적용된 손쉬운 기능을 설명하고 이를 실제로 사용하는 간단한 예시를 영상으로 보여줍니다. 영상 속에서 Sady Paulson은 머리 양 쪽에 달린 두 개의 스위치를 조작함으로써 Final Cut Pro를 능숙하게 조작합니다. 실제로 그녀는 Final Cut Pro X 자격증을 가지고 영상 편집기사로 활동하고 있죠.
애플은 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에도 역시 손쉬운 사용과 관계된 7개의 동영상을 게시했는데요, 이 영상들은 한 편마다 한 명의 사람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각 영상의 제목들 역시 장애인 분들의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백문이 불여일견, 각각의 영상들을 살펴봅시다.
Carlos V를 위해 만들다
이 영상의 카를로스는 시력을 잃은 시각 장애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헤비 메탈을 연주하는 Distratica의 리드 싱어이자 드러머이고, 홍보 매니저 역시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상 속에서 아이폰의 ‘화면 커튼’ 모드를 활용해 화면을 끈 상태에서 VoiceOver를 사용하여 사진을 촬영하고, 택시를 잡고, SNS를 통해 밴드를 홍보하기까지 합니다. 개인적으로 헤비메탈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 영상을 보고 Distratica의 새로운 앨범을 한 번 들어봤습니다. 음… 저는 헤비메탈에 대해 무지해서 평가를 내릴 순 없겠네요.
Ian M을 위해 만들다
두 번째 영상의 주인공은 이안 맥케이입니다. 그는 사고로 목 아래 부분이 마비되었는데요, 아이폰과 연동된 마이크과 머리의 움직임으로 조작할 수 있는 스위치를 가지고 아이폰을 사용합니다. 영상 중에서 시리를 이용해 새 소리를 내서 새를 불러들이는 모습이나(실제로 가능한 걸까요) FaceTime을 통해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풍경을 함께 감상하는 모습은 절로 흐뭇한 웃음이 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아이폰에서 스위치 제어가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지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Meera P를 위해 만들다
미라 필립스는 15살의 앳된 소녀인데요, 운동과 말하기를 관장하는 부분에 발생한 뇌갈림증 때문에 목소리를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미라는 영상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축구 경기를 보면서 아이패드의 TouchChat 앱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영상의 하이라이트는 미라가 아이패드를 이용해 아재개그를 치는 부분인데요, 심심한 소가 길을 건넌 이유는 소일거리를 찾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Andrea D를 위해 만들다
안드레아는 간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면서 뉴욕의 미스 휠체어였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지역 사회의 장애인들에게 힘을 줘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watchOS 3에 새로 추가된 휠체어 운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신체적 장애가 없지만 안드레아만큼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몸을 가꿀 자신이 없네요.
Patrick L을 위해 만들다
패트릭은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라디오 DJ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패트릭은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어버렸는데요, 영상 속에서 그는 맥의 VoiceOver 기능을 사용해 Logic Pro X을 능숙히 사용해 자신의 음악을 만들 쁀 아니라 시리와 아이폰의 VoiceOver를 활용해 음식 재료를 찾고 직접 요리까지 만들어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져다줍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음식을 받아들고 짓는 행복한 표정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듯한 모습이었습니다.
Shane R을 위해 만들다
셰인은 미국의 중학교에서 밴드와 합창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날 자신이 낮은 음을 듣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결국 저주파 청력 상실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상 속의 그녀는 여전히 밴드를 지휘하고 있는데요,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Made for iPhone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상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6.25 전쟁에서 청력 손실을 입으셨던 할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괜히 눈물이 나네요.
Todd S를 위해 만들다
토드는 사지가 마비된 환자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테크놀로지 컨설팅 회사의 CEO로 멋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시리에게 네 바퀴 갓파더라는 별명으로 불리길 좋아합니다. 이 영상은 홈킷 사용의 정석을 보여주는데요, 토드는 시리에게 명령하여 현관문을 열고 커튼을 걷고 집안의 조명을 조절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비슷한 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흥겨운 파티를 여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저도 절로 신이 나는 것 같습니다.
글을 맺으며
이 모든 영상의 끝은 각각의 영상 제목과 함께 ‘모두를 위해 만들다’ 라는 문구입니다. 흔히 그 수가 많지 않은 장애인들을 위한 기능은 여러 서비스를 개발할 때 후순위로 밀리기 마련입니다. 이런 접근성의 향상을 위해서는 경영자부터 개발자에 이르는 조직의 구성원이 우리 서비스를 모두를 위해 만들겠다는 때 비로소 가능할 것입니다. 닥터몰라의 경우에도 시각 장애인들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글을 쓸 때 모든 사진들에 적절한 설명을 입력해줘야 한다는 규칙을 제가 정한 바 있는데요, 당장 저만 하더라도 글을 쓰면서 이미지에 적절한 설명을 입력하는 것을 깜빡하곤 합니다. 이런 면에서 애플과 같은 큰 기업이 이렇게 접근성에 대해 환기시켜주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일 것입니다.
이제 WWDC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미 작년부터도 운영체제의 곳곳에 인공지능들이 녹아들어가고 있었는데요, 이런 경향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이 손쉬운 사용 부분에서도 이런 신기술을 적용해서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모든 분야의 기업들이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라는 내용에 좀 더 신경을 쓰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습니다.
필자: Jin Hyeop Lee (홈페이지) 생명과학과 컴퓨터 공학의 교차점에서 빛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DrMOLA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참조
• 애플과 접근성 :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을 맞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