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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27일(현지 시각) 아이팟 나노와 셔플을 조용히 단종시켰습니다. 두 제품 모두 나온 지 12년 만입니다. 이 제품들을 볼 수 있었던 Music 탭에 들어가 보면 이제는 아이팟 터치만 남아 있습니다.
* 1세대 아이팟 나노. (사진: 애플)
아이팟 나노와 셔플은 모두 2005년에 발표됐습니다. 그 해 9월에 출시된 아이팟 나노는 마이크로 드라이브 기반이었던 아이팟 미니를 대체한 플레이어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나노를 청바지의 동전 주머니에서 꺼내는 퍼포먼스로 작은 크기를 강조하며 선보였는데, 나노의 작은 크기는 저장 매체를 기존의 하드 드라이브에서 플래시 메모리로 바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 아이팟 셔플 라인업. 왼쪽부터 1세대부터 4세대까지
2005년 1월에 선보인 셔플은 아이팟 라인업에서 최초로 플래시 메모리를 탑재했습니다. 또한 “인생은 랜덤”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어떠한 화면도 탑재하지 않은 획기적인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심지어 “인생은 랜덤”이라는 철학(?)에 맞게 아이튠즈에서 곡을 넣을 때도 아예 랜덤으로 넣어버리는 기능도 있었습니다.
* 아이팟 나노 라인업.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1세대부터 7세대까지. (사진: 512 pixels)
이후 두 플레이어 모두 조금씩 기능과 디자인을 개선한 후속 모델을 꾸준히 선보였습니다. 특히 아이팟 나노는 클릭 휠을 버리고 작은 정사각형 터치 스크린을 탑재하면서 애플 워치의 뜻하지 않은 조상이 되기도 했죠. 하지만 이 두 모델 모두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조금씩 설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늘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에 아이팟이 있는데 굳이 아이팟을 따로 살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이팟 나노는 2012년에 7세대로 마지막 업데이트가 이뤄졌고, 셔플은 2010년에 나온 4세대 이후 무려 7년 동안 하드웨어 업데이트가 없었습니다.
* 2015년에 선보인 애플 뮤직은 아이팟 나노와 셔플의 관짝에 못을 박은 꼴이었습니다.
결국 2015년에 애플의 음악 사업의 초점이 음원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넘어가면서 인터넷 연결 기능이 없는 나노와 셔플은 정말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애플 뮤직에서 받은 음원은 인증 문제로 나노와 셔플에서 재생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우회할 방법은 물론 있었겠지만, 애플은 그냥 2년 뒤인 오늘 아이팟 나노와 셔플을 단종시키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노와 셔플의 단종은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1.8인치 하드 드라이브를 쓰는 아이팟 클래식은 지난 2014년에 단종됐고, (당시 애플은 부품 수급의 어려움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인터넷 연결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애플 뮤직의 음원을 재생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애플의 음악 사업에서 뒷전으로 밀려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용 MP3 플레이어의 대표주자나 다름없었던 아이팟 나노와 셔플의 단종은 애플뿐만 아니라, IT의 역사에 있어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애플은 이제 단 하나의 아이팟 모델인 터치만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 새로 나온 6세대는 아이폰 SE와 똑같은 4인치 디스플레이에 아이폰 6의 A8 프로세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iOS를 탑재해 아이팟이라고는 하나 아이폰에서 셀룰러 라디오가 빠진 제품이나 다름없습니다. 애플은 나노와 셔플의 단종과 함께 터치에 대한 가격 인하와 용량 업데이트를 단행했는데요, 16/64GB 모델을 단종시키고, 32/128GB 모델의 가격을 각각 낮췄습니다. 이제 32GB 모델은 273,000원, 128GB 모델은 402,000원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필자: 쿠도군 (KudoKun) 컴퓨터 공학과 출신이지만 글쓰기가 더 편한 변종입니다. 더기어의 인턴 기자로 활동했었으며, KudoCast의 호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