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닥터몰라님이 애플의 스페셜 이벤트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했을 때, 저는 이 지령을 반복적으로 보냈습니다.
“거기선 아이폰 X 핸즈온만 써 오세요.”
어차피 많은 사람들은 디자인 변화가 많지 않은 아이폰 8보다는 아이폰 10년의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아이폰 X에 더 관심이 많을 거라 예상했고, 그 예상은 최소한 반은 맞았습니다. 닥터몰라님이 쓰신 아이폰 X의 핸즈온 기사가 올라간 후, 백투더맥은 하루 방문자 수 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도 제 판단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폰 X의 급진적인 디자인 변화는 일부 잠재적 소비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아이폰 8이 같이 발표된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서 아이폰 8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대부분이 아이폰 X과 8 사이에서 고민하는 눈치였지만, 처음부터 아이폰 8을 살 마음을 먹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그래서 (좀 많이 늦었지만) 써봅니다. 아이폰 8의 핸즈온.
3년 된 디자인의 완성
아이폰 8의 디자인은 3년 전 아이폰 6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무려 3년이나 됐고, 벌써 이 디자인을 쓰는 것도 4세대째입니다.
* 무려 3년 전 리뷰 때 찍은 사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계열의 아이폰 디자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뒷면이었는데, 아이폰 6 때는 거대한 안테나 선(“절연띠”라 불렀죠)이 전체적인 디자인을 해친다는 의견이 많았고, 저도 동의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애플이 이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아이폰 7에 와서는 안테나 설계를 변경해 선을 가장자리로 밀어버릴 수 있었고, 블랙과 제트 블랙은 안테나 선도 검은색으로 칠하면서 육안으로는 구분이 어렵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이폰 8은 아이폰 6으로부터 계속된 디자인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은 거의 똑같지만, 뒤를 기존의 알루미늄에서 유리로 교체했습니다. 애플에 따르면 “스마트폰에 장착되는 유리 중에서 가장 단단하다”라고 합니다. 실제로 그런지는 두고 봐야겠지만요. 이 유리 뒤판과 전면의 디스플레이 부분을 지지하기 위해 새로운 강철 하부 구조와 시리즈 7000 알루미늄 밴드로 덧댔습니다. 이제 안테나선은 이 밴드의 위아래에만 하나씩 그어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리 샌드위치 구조를 선택했던 아이폰 4s에 대한 오마주 같기도 합니다.
유리로 바꾸면서 얻게 되는 것은 바로 무선 충전입니다. 아이폰 8부터는 치(Qi) 표준을 지키는 무선 충전기 위에 올려서 충전을 할 수 있습니다. 충전 코일이 아이폰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서 폰을 가운데에 놓아주어야 충전이 잘 됩니다. 지금은 5W 정도의 매우 느린 속도이지만, 이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7.5W 정도까지 올릴 계획이라고 합니다. (여전히 최대 15W까지 지원하는 치 고속 충전보다는 느립니다)
* 아이폰 7 플러스 (왼쪽), 아이폰 8 플러스 (오른쪽)
전면의 레티나 HD 디스플레이는 아이폰 7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아이패드 프로에 이미 적용됐던 트루 톤 디스플레이가 처음으로 아이폰에 들어갔습니다. 그 비교는 제 아이폰 7 플러스와 비교한 위 사진을 참조해보시면 7 플러스가 주변 조명과 색을 맞춘 아이폰 8 플러스보다 눈에 띄게 파랗게 보입니다.
전체적인 도장의 변경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번 아이폰 8의 도장 옵션은 총 세 가지로, 스페이스 그레이, 실버, 골드입니다. 이 중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골드인데, 실제로 보면 금색보다는 살구색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눈에 편안한 색이랄까요. 워낙 색이 옅은 편이라 사진 찍기도 꽤 어려운 색이기도 합니다. 옛날 맥의 디자인 언어인 “스노우 화이트”에 쓰인 플라스틱 케이스의 색과 비슷합니다. (엄밀히 얘기하면 좀 더 옅습니다) 이쁘긴 한데, 제 취향은 아니더군요.
스페이스 그레이는 처음에는 ‘왜 그렇게 부르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직접 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확실하지 않지만, 육안으로 보면 완전한 검은색이 아닙니다. 까먹고 제가 쓰는 제트 블랙 아이폰 7 플러스과 비교하는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 제트 블랙과 비교하면 회색이라는 단어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폰 6이나 6s처럼 완전히 옅은 회색은 아니기도 하고요. 마음에 듭니다. 실버야 뭐 우리가 늘 알던 그 색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유리로 구현한 실버는 꽤 괜찮습니다. 예전 아이폰 4처럼 아예 화이트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긴 했지만요.
아이폰 8의 디자인은 4세대에 걸쳐 끌어온 디자인의 완성형이라는 느낌입니다. 아이폰 X에서 이어질 새로운 아이폰의 디자인에 바통 터치를 해주기에 부끄럽지 않은 디자인이랄까요. 물론 아이폰 6의 태생적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이 디자인의 시발점보다는 훨씬 나아 보입니다.
카메라, 물리 법칙의 한계 극복을 시도하다
사실 아이폰 8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카메라였습니다. 소니 a7에 RX1, RX100을 구비하며 나름 모든 사진 촬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그래도 그 카메라가 하나도 없는 순간에 아이폰은 꽤 실력 좋은 카메라의 역할을 잘 수행했습니다. 자주 쓰다 보니 그 한계도 명확히 알고 있었고요. 그러니 새 아이폰의 카메라 성능이 궁금한 것은 당연지사겠죠.
저야 아이폰 X을 사기로 결정한 상태지만, 아이폰 8에 들어간 센서가 X의 것과 같은 센서이기도 하고, (다른 점은 망원 렌즈의 최대 개방 조리개 값이 더 낮고, 망원 모듈에도 OIS가 들어간 것 정도입니다) 마침 출시일 아침에 카메라 센서와 렌즈의 벤치마크를 매기는 DxOMark에서 아이폰 8 시리즈에게 최고의 스마트폰 카메라라는 타이틀을 부여했다(1위가 아이폰 8 플러스, 2위가 아이폰 8)는 소식을 듣고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두 모델 중 제가 테스트해본 모델은 아이폰 8 플러스입니다. 8 플러스의 렌즈 구조(F1.8 광각, F2.8 망원)는 7과 같지만, 새로운 센서를 탑재했고, 여기에 A11 바이오닉의 새로운 ISP를 조합하는 구조입니다. 데모의 환경상 카메라의 모든 기능을 완전히 시험해보지는 못했고, 많은 개선이 있었다고 한 인물 사진 모드와 인물 사진 조명 모드를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데리고 간 후배를 모델로 삼아 몇 장 찍어봤습니다. (물론 동의를 구했습니다. 그러고 사진을 보여줬죠) 아래 샘플 사진은 아이폰 8 플러스에서 촬영한 후 에어드롭으로 가져온 후, 리사이즈와 워터마크 작업 외에는 어떠한 보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 기본 인물 사진 모드. (초상권 보호를 위해 사진의 무단 수정 및 재배포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일단 기본 인물 사진 모드로 찍은 사진입니다. 일단 아이폰 7 플러스보다 장면을 인식하는 속도가 확연히 빨랐고, 무엇보다 7 플러스보다 배경 구분을 좀 더 정확하게 해내는 느낌이었습니다. 지난해 인물 사진 모드가 처음으로 탑재되기 시작한 후부터 매번 iOS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정확도나 속도가 개선되는 느낌이었는데, 확실히 ISP와 센서가 바뀌고 나니 더 많은 발전을 보였습니다. 기존 7 플러스의 인물 사진 모드가 사실상 야외가 아니면 쓸 게 못 됐던 것과 비교해, 8 플러스는 실내에서도 광량만 충분하다면 꽤 출중한 사진을 뽑아냅니다.
* 인물 사진 조명의 무대 조명 효과. (초상권의 보호를 위해 사진의 무단 수정과 재배포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하지만 아이폰 8 플러스의 새로운 특기는 바로 ‘인물 사진 조명 (Portrait Lighting)’입니다. 인물 사진 모드의 알고리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스튜디오나 야외에서 제대로 조명을 갖추고 촬영한 효과를 추가로 얹어주는 기능입니다. 좀 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무대 조명과 무대 조명 모노로 촬영을 해봤습니다. 사실 무대 조명으로 설정하면 좀 어색한 티가 많이 납니다. 무대 조명 설정의 원리가 사실상 초점이 잡히는 부분(=얼굴)을 중심으로 거리를 계산한 다음 조금씩 페이드 아웃시키는 것인데, 몸 부분은 이 효과가 자연스럽지만 오히려 얼굴 쪽에서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모노로 바꾸면 이 효과도 좀 더 자연스러워집니다. 약간 타임이나 라이프 지의 표지 사진과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 인물 사진 조명의 무대 조명 모노 효과. (초상권 보호를 위해 사진의 무단 수정 및 재배포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애플은 인물 사진 조명 기능은 베타라고 밝혔습니다. 역시 지난해에 베타로 시작한 인물 사진 모드가 1년 동안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생각하면, 인물 사진 조명 기능의 발전 속도도 기대됩니다. 그때까지는 상황에 따라 효과를 바꿔가면서 쓰면 될 것 같습니다. (인물 사진 조명 기능은 사진을 찍고 나서도 편집에서 효과를 바꿀 수 있습니다)
카메라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늘 회자되는 말은 “판형이 깡패”라는 말입니다. 이미지 처리 기술이 얼마나 발전을 했던지 결국 센서 크기가 작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인데요, 아이폰도 이 물리학 법칙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아이폰 7과 비교해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도 사실 더 큰 센서가 들어갔기 때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발전 속도를 보면, 언제까지 “판형이 깡패”라는 말을 계속 쓸 수 있을지도 사뭇 궁금해지긴 합니다.
번외편: 애플 워치 시리즈 3
이 날 출시된 제품은 아이폰 8 뿐만이 아닙니다. 애플 워치 시리즈 3과 애플 TV 4K도 있었습니다. 다만 애플 TV는 4K TV에 연결된 것이 아니라서 별 의미가 없었고, 대신 워치 시리즈 3을 보도록 하죠.
요즘 기계식 시계를 차고 다니기 때문에 애플 워치를 차는 것도 참 오랜만인데, 느낌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LTE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무게 증가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했다는 의미겠지요. 옆의 디지털 크라운에는 복수를 위한 빨간 점이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많이 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시계를 볼 때 측면을 볼 일이 자주 없으니까요.
어차피 시연용 유닛이 LTE에 연결된 것은 아니라서 문제의 연결 상태는 시험해볼 수 없었습니다. (일련의 버그 사태를 겪고 LTE 시연을 금지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프로세서 시연은 가능했는데요, 정말 장족의 발전입니다. 뭘 하던 휙휙 잘 넘어갑니다.
사실 도장은 알루미늄 골드 빼곤 바뀐 게 거의 없어서 큰 감흥이 없긴 한데, 세라믹 그레이는 이쁘더군요.
태풍 전야
사실 오늘 애플 스토어를 간 건 아이폰 8을 직접 보기 위함도 있지만 과연 수요가 얼마나 있을까 가늠해보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스토어를 방문한 게 오후 12시쯤이었는데, 아직 줄이 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좀 팔렸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직원한테 물어봤더니, 아직 전 모델 재고가 남아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아이폰 8 재고가 넉넉한 것도 있겠지만, 확실히 수요가 적었다는 것도 느껴졌습니다.
다음 달에는 아이폰 X이 예약 판매에 들어갑니다. 오늘 출시된 아이폰 8의 미지근한 반응은 다가오는 아이폰 X 태풍을 벌써부터 느끼게 합니다. 아이폰 X의 가격은 999달러로, 아이폰 사상 가장 비싼 가격입니다. 하지만 소비자들(특히 IT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은 기꺼이 X을 선택할 겁니다.
그렇다면 아이폰 8은 누굴 위한 것일까요? 더 버지의 닐레이 파텔은 "기본 사양의 스마트폰 (The default phone)"이라는 표현을 썼었습니다. X에 큰 관심이 없고 그냥 구형 아이폰이 느려지고 업데이트할 때가 돼서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아이폰이 8의 역할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아이폰 8이 약간 아이폰 SE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SE는 4인치의 크기가 그리운 소비자를 위한 애플의 선물 보따리 비슷한 느낌이었죠. 아이폰 8도 비슷합니다. 옛 디자인에 최신 기술을 담은 스마트폰. 아이폰의 홈 버튼을 그리워할 소비자를 위한 애플의 선물 보따리인 셈입니다.
그리고 SE와 비슷하게, 마지막이 될 거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요.
필자: 쿠도군 (KudoKun) 컴퓨터 공학과 출신이지만 글쓰기가 더 편한 변종입니다. 더기어의 인턴 기자로 활동했었으며, KudoCast의 호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