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까고 말하자면, 애플이 지난 3월에 내놓은 새로운 아이패드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나라면 아이패드 프로를 샀을 것이고, 그리고 올해 말에 신형 모델이 나오면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금 이 2018년형, 혹은 6세대 아이패드에 대한 리뷰를 쓰고 있냐고? 물론 이 아이패드를 한 두 달 정도 써봤기 때문이다. 사실 원래 내가 생각했던 대로라면 지금쯤 새 아이패드 프로를 쓰고 있었을 테지만, 애플이 WWDC때 어떠한 하드웨어 발표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이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다.
오해는 말자. 이 아이패드는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 여러분에게는 딱 맞는 아이패드다. 아이패드 프로가 너무 비싸서 망설였다면, 이 아이패드가 그 고민의 85%는 해결해줄 것이다. 나에게는 그저 나머지 15%가 문제일 뿐이다.
디자인
6세대 아이패드의 디자인은 아이패드 에어에서 가져온 디자인이다. 즉, 5년이 다 되어가는 디자인인 셈이다.
그게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기능적인 면에 있어서 아이패드 에어의 디자인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물론 이후에 나온 아이패드 에어 2보다 조금 더 무겁고 두껍긴 하지만, 크게 결함이 있는 디자인은 아니었으니까. 이때쯤 아이패드의 디자인은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 강했고, 이때 정립된 아이패드의 디자인은 지금의 아이패드 프로까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아이패드 에어와 직접적으로 비교했을 때 차이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커버 유리와 알루미늄 섀시가 만나는 모서리가 기존의 다이아몬드 커팅 처리 대신 매트 처리가 되어 있다. 아이폰 SE도 5s에서 넘어올 때 비슷한 디자인 변화를 겪었는데, 저가형이라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려는 느낌이 강하다. 또한, 아이패드 에어 2에서부터 빠진 하드웨어 스위치는 여기에서도 빠져 있다.
세 번째는 도장일 텐데, 기존의 스페이스 그레이와 실버는 그대로지만, 골드는 아이폰 8에서 도입된 새로운 색을 가져와서 옐로 골드보다는 로즈 골드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이다.
디스플레이
6세대 아이패드는 에어의 디스플레이도 그대로 가져왔다. 9.7인치의 2048x1536 디스플레이로, 264 ppi의 준수한 픽셀 밀도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이 디스플레이의 문제점으로 라미네이트 처리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말인즉슨 디스플레이 패널과 유리가 접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디스플레이 패널과 커버 유리 사이에 간격이 생기게 되는데, 야외 시인성이나 디스플레이의 전반적 체감 화질이 낮아진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이패드를 단순한 책 읽기나 영상 시청용으로 구매한다면 크게 문제 될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신경이 쓰이는 것은 트루 톤이 지원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트루 톤은 주변광 상태에 따라 자동으로 디스플레이의 색온도를 조정해주는 기능이다. 원래 나도 아이패드가 없어서 잘 쓰지 않던 기능이었지만, 지난해에 아이폰 X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트루 톤을 매일매일 맛보고 있다.
트루 톤의 강점은 트루 톤이 없는 모바일 기기를 쓸 때 알게 된다. 노란 조명 아래에서 퍼런 화면을 보고 있으면 은근히 눈이 피곤해진다. 있을 때는 모르다 없어지면 허전한 것이 트루 톤이다. 그리고 이 아이패드에서 트루 톤의 부재는 매우 허전하게 느껴졌다.
스피커
내가 웬만한 애플 기기 리뷰를 할 때 스피커 얘기는 한 마디만 하고 넘어간다. 좋다고. 딱히 긴 말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애플 기기의 스피커들은 기기 크기를 감안했을 때 멋진 사운드를 뽑아주곤 했다. 특히 아이패드 프로에 달린 4개의 스피커는 섀시 전체를 둥둥 울릴 정도였다.
그렇다면 왜 6세대 아이패드의 리뷰에 스피커 섹션을 만들었는지 대충 예상이 가실 것이다.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트루 톤과 더불어 디스플레이와 커버 유리 사이의 간격보다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6세대 아이패드의 스피커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방향이다. 아래로만 향해 있다. 문제는 이게 세로 기준 아래라서 영상을 보기 위해 가로로 틀면 스피커는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위치가 바뀐다. 즉, 사운드가 한쪽에서만 나온다는 소리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은근히 거슬리는데, 결국 아이패드로 뭘 보려면 늘 블루투스 스피커로 연결을 하거나, 이어폰을 찾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스피커가 뽑아내는 사운드 자체는 애플 제품의 스피커가 늘 그렇듯이 준수한 편이다. 물론 아이패드 프로급의 화려한 사운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써먹을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이 출력 방향의 문제가 사실상 이 스피커를 쓸모없게 만든다.
성능
6세대 아이패드에는 A10 퓨전이 들어가 있다. 아이폰 7이 쓰는 그 프로세서다. 43만 원짜리 아이패드에 아이폰 8과 X이 쓰는 최신 A11 바이오닉이 들어가리라 믿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아이패드 프로는 A10의 개량형인 A10X를 쓰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A10이 느리냐? 당연히 아니다. A10의 성능은 출시 1년 반 후인 지금에 와서도 문제가 전혀 없다. 2048x1536의 해상도에서 모바일용 펍지 배틀그라운드를 구동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즉, 이 아이패드의 주 용도가 될 웹 서핑이나 동영상 시청, 게임 등을 구동하는 데 있어 성능 면에서는 걱정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 아이패드 프로의 A10X와 비교하면 후달리는 건 사실이다. A10과 A10X는 사실상 같은 고효율 코어(“Hurricane”)와 고성능 코어(“Zephyr”)를 사용하지만, A10X는 각각의 코어가 하나씩 더 많고(각각 2개 vs 각각 3개), 그래픽 코어의 수도 두 배 차이다. 그렇다 보니 벤치마크를 돌려보면 이 차이는 명확하게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반 6세대 아이패드 사용자의 일반적 사용 특성을 고려해볼 때, 벤치마크로 보이는 이 성능 차이가 눈에 띌 정도로 아이패드를 한계에 내모는 사용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패드에 탑재된 A10의 가장 큰 문제라면 바로 메모리다. 2GB가 들어가 있는데, 화면 분할 등 멀티태스킹 시나리오가 아이폰보다 훨씬 많은 아이패드에서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불리하다. 이미 4GB가 들어간 아이패드 프로와 비교해 동시에 띄울 수 있는 앱이 하나 덜하다. (아이패드 프로는 화면 분할 앱 2개에 슬라이드 오버 하나, 아이패드는 화면 분할 앱 2개 아니면 기존 앱 하나에 슬라이드 오버 하나)
아이패드 제품군의 배터리는 맥이나 아이폰과 달리 늘 최상이었고, 6세대 아이패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애플은 모든 아이패드가 그랬듯이 최대 10시간의 배터리 시간을 보장하고 있고, 거의 정확하게 이 시간을 지켰다. 내가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특성상 2~3일은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었다.
애플 펜슬
여기까지 보면, 6세대 아이패드는 지난해에 나온 5세대의 점진적인 발전으로 보인다. 디자인은 바뀌지 않았고, 내부 사양은 딱 1년 치만큼의 적당한 업데이트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 아이패드가 정말 기존의 아이패드 라인업과 차별화되는 것은 바로 애플 펜슬의 지원이다.
* 아이패드 프로에서 애플 펜슬을 사용하는 모습
지금까지 애플 펜슬은 아이패드 프로만의 영역이었다. 애플이 아이패드 “프로”라는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차별점 중 하나였다. 최고의 태블릿용 스타일러스라는 애플 펜슬을 쓰려면 울며 겨자먹기로 아이패드 프로를 사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43만 원부터 시작하는 기본형 아이패드에서도 애플 펜슬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프로에서 펜슬을 사용하는 것과 비교해 몇 가지 불리한 차이점이 있긴 하다. 먼저, 위에 언급한 디스플레이 패널과 커버 유리 사이의 격차 대문에 아이패드 프로만큼 필기감이 좋지는 않다. 쓰는 각도에 따라 약간의 오차가 생길 수 있는데, 정밀도를 요하는 게 아니면 크게 신경 쓰일 부분은 아니다. 두 번째로, 아이패드 프로 디스플레이의 주사율이 이 아이패드보다 2배 더 높기 때문에 반응 속도가 두 배 정도 느리다. (21ms vs 40ms)
하지만 애플 펜슬의 지원은 이 기본형 아이패드의 용도를 충분히 바꾼다. 기존의 아이패드를 학교에서 공책 대용으로, 혹은 회의 기록용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회사들 입장에서도 이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비싼 아이패드 프로를 구매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 학생이었던 시절에는 시험에 들고 들어갈 수 있는 참고용 노트도 애플 펜슬로 작성했다.
이미 닥터몰라님이 애플 펜슬의 다양한 사용 사례에 대한 기사를 올리셨으니 참고하면 좋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애플 펜슬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그림도 잘 못 그릴뿐더러, 악필이라 글씨도 잘 못 쓴다. 그래서 아이패드 프로를 사더라도 스마트 키보드만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입사하고 나서 애플 펜슬을 아이패드와 조합해 쓰기 시작하니 내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빠르게 수기로 노트를 작성하는데 애플 펜슬은 최적이었다. 또한 이 아이패드에서 지원하는 지연 속도는 그림을 그릴 때는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속기용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애플 펜슬에서 개선할 점이 있었으면 하는 건 사실이다. 먼저 연결 문제인데, 일단 페어링이 되어 있더라도 아이패드와 펜슬 사이가 멀리 떨어져 있었던 때가 있었다면 자동으로 연결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 때는 펜슬을 아이패드에 꽂아서 강제로 재연결을 해줘야 했다. (아이패드에 연결한 모습에 대한 얘기는 하도 밈 소재로 많이 쓰였으니 또 얘기하진 않겠다) 또한, 펜슬 자체에 전원을 강제로 끄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안 쓰고 있는 와중에도 배터리가 조금씩 닳는다. 그래서 정작 쓰려고 할 때 배터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 물론 펜슬의 배터리 용량은 큰 편이 아니라서 충전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의 귀찮음을 초래하는 건 사실이다. 아이패드에 꽂고 다닐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잃어버리기 쉽다는 문제도 여전하고 말이다. (지금은 자석이 달린 그립을 사서 스마트 커버에 붙여서 고정시키고 있다)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패드의 애플 펜슬 지원은 사용 용도의 반경을 확연히 넓혀준다. 특히 43만 원의 가격에 이 정도 성능의 스타일러스를 사용할 수 있는 태블릿은 거의 없다. 이 방면에서 아이패드를 앞설 만한 태블릿은 없다는 얘기다.
뭘 사야 할까?
이쯤 되면 이제 고민이 들 것이다. “아이패드 프로를 사야 할까, 아니면 이 아이패드를 사야 할까?”라는 고민 말이다.
일단 이 고민이 든다면, 보통 답은 그냥 6세대 아이패드를 사는 것이다. 이 리뷰의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이 아이패드는 여러분이 아이패드 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용 케이스의 85%를 채워줄 것이다. 디자인이나 디스플레이도 준수하고, 스피커 문제는 웬만하면 신경이 안 쓰이거나 쓰인다면 블루투스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성능은 나무랄 것이 없고, 여기에 이제는 애플 펜슬까지 지원한다.
그럼 왜 나는 프로를 산다 했을까? 그 15%는 뭐였을까? 트루 톤의 미지원, 스피커의 출력 방향 등의 문제는 이미 언급했지만,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스마트 커넥터 및 스마트 키보드의 미지원이다. 블로거인 입장에서 어디서든지 글을 쓸 수 있는 도구로서의 아이패드는 정말 매력적이다. (물론 티스토리 때문에 실제로 게시는 못 하지만) 하지만 스마트 커넥터가 없다면 블루투스 키보드를 따로 가지고 다니거나, 키보드가 내장된 두꺼운 케이스를 써야 하는데, 솔직히 말해 별로 좋은 솔루션은 아니다. 둘 다 아이패드가 가지고 있는 휴대성이라는 장점을 깎아먹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자가 어떨까 싶어 로지텍의 슬림 폴리오 케이스를 사용해 봤는데, 슬림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두께 때문에 사용하기가 영 불편했다. 기존 아이패드의 두께를 두 배 이상 늘려버리기 때문. 물론 스마트 키보드의 키감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이미 비슷한 스위치 구조인 12인치 맥북과 13인치 맥북 프로(2016)를 사용하고 있는 나는 충분히 익숙해졌고, 평소에는 스마트 커버로 활용할 수 있는 얇은 두께는 아이패드의 포인트 중 하나인 휴대성을 증대시켜준다. 스마트 키보드가 없는 6세대 아이패드는 이런 방면에서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패드를 지난 3개월간 사용하면서 놀란 것은 이제 아이패드가 얼마나 유용해졌는지였다. 키보드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기사를 쓸 여유가 생기면 율리시스를 켜서 가상 키보드를 써서라도 재빨리 기사를 쓸 수 있다. 1TB 온라인 저장 공간을 지원하는 어도비의 새로운 라이트룸 CC 덕분에 아예 아이패드에서 라이트룸 라이브러리에 사진을 넣어 동기화할 수 있고, 유사시에는 아이패드에서 보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행을 다닐 때에는 웬만해서는 맥북 프로를 따로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다. 디스플레이가 하나뿐인 맥을 사용하고 있을 때에는 유사시에 훌륭한 세컨드 스크린이 되기도 한다. 기존의 영상 시청이나 독서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여전히 충분히 가능하고.
만약에 나와 비슷하게 “아이패드 프로를 사야 한다”라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다면, 아이패드 프로를 사는 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6세대 아이패드로 충분하다. 내가 이렇게 말했는데도 아직도 고민 중이라면,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자 한다. 이 아이패드의 가장 비싼 모델(128GB 셀룰러)이 가장 저렴한 아이패드 프로(10.5인치 64GB WiFi)보다 저렴하다. 그냥 그렇다고.
필자: 쿠도군 (KudoKun) 컴퓨터 공학과 출신이지만 글쓰기가 더 편한 변종입니다. 더기어의 인턴 기자로 활동했었으며, KudoCast의 호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