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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아니 이걸 이 가격에?' 애플 프로 디스플레이 XDR (Feat. ColorScale)

‘이 글은 디스플레이 리뷰 그룹 ColorScale(링크)이 제공합니다’

사진: 애플

WWDC에서 애플의 프로 디스플레이 XDR이 발표된 지도 2달여가 지났다. 처음 프로 디스플레이 XDR이 발표되었을 때 가격에 초점이 맞춰져 제품 자체에 대한 관심이 묻혔던 것 같다. 물론 판매되는 제품에 가격 이야기를 안 할수 없겠지만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제품 자체로 굉장히 흥미로운 면이 많기 때문에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맥 프로를 다룬 글(링크)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고해상도(4K 이상) HDR 영상 편집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K라는 고해상도는 4K 영상을 다운샘플링 없이 보면서도 편집을 위한 UI를 띄울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또 광색역(P3), 10비트 색심도, 1,000,000:1의 명암비(Contrast Ratio), 지속 1,000니트(칸델라 매 제곱미터) / 최대 1,600니트의 높은 최대밝기를 지원함으로써 HDR 콘텐츠를 완벽하게 보여줄 수 있는 몇 안되는 모니터이다.

이 모니터에 대한 내용을 들었을 때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반응은 ‘이걸 이 (비싼) 가격에?’일 것이고, 두 번째 반응 역시 ‘이걸 이 (싼) 가격에?’일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전자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모니터에 100만원을 쓰는 것도 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모니터의 미덕은 컨텐츠를 깔끔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더 해상도가 높고 명암비가 좋고 색이 화사한 모니터를 보면 좋아하긴 하지만 거기에 큰 금액을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진다. 그 중에서 좋은 모니터에 돈을 좀 쓰려는 사람들 역시 100만원대가 마음속의 상한선일 것이다. 실제로 이보다 비싼 디스플레이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가치는 그런 디스플레이를 구매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추가비용에 비해 훨씬 작다. 이들에게 스탠드를 포함해 5999달러짜리 모니터는 언어도단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후자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들은 직업적으로 고해상도의 HDR 영상을 편집해야 하는 사용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정확한 색을 보기 위해서 아예 별도의 방을 만들고, 그 방을 시청 표준에 맞게 꾸밀 정도로 정확한 색을 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 HDR 컨텐츠를 제대로 보기 위한 디스플레이가 많지 않아 아쉬움을 느낀다. 이들의 기준에서 수천 달러 대의 적당한 가격의 모니터들은 항상 하나씩 나사가 빠져 있었다. 암부가 충분히 어둡지 않거나, 제대로 된 HDR을 구현하기에는 최대 밝기가 너무 낮았다. 그렇다고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디스플레이는 이들의 기준에서도 비싼 수만 달러대의 가격에 포진하고 있다. 이런 이들은 위 조건들을 완전히 충족시켜줄 수 있는 5999달러짜리 모니터는 가뭄에 단비같은 존재일 것이다.

새로운 맥 프로를 다룬 글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전문가의 도구로써 활용되는 기기의 가격은 그 도구가 실제 전문가의 워크플로우에 얼마나 필요한지, 얼마만큼의 추가 가치를 제공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 결정된다. 물론 이 시장에서도 가격은 중요하다. 모든 면에서 동일한 성능과 신뢰성을 제공하는데 더 비싼 옵션을 선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업의 목표인 이윤 창출에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장은 기술력과 보수적인 사용자들의 성향 양 쪽 모두에서 신규 사업자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고, 시장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기존 사업자들도 출혈경쟁을 벌여 점유율을 높일 유인이 크지 않다. 따라서 몇 개의 (혹은 한 개의) 업체가 적당히 높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는 형태의 시장이 유지된다. 따라서 이런 시장은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장과 괴리되어 있다.

맥 프로와 프로 디스플레이 XDR을 공개한 후 애플에 쏟아지는 가격에 대한 비판은 이런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비판은 어쩌면 전문가용 제품을 일반 사용자들에게도 마케팅하는 애플이 져야 할 숙명일지도 모른다. 본 글에서는 애플의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대해 기술적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이 제품이 실제로 전문가들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짚어보려 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을 종합해서 가격에 대한 논란도 어느 정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HDR 간단히 살펴보기

프로 디스플레이 XDR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HDR에 대한 이야기이다. 애플이 프로 디스플레이 XDR을 마케팅할 때 가장 중요하게 꼽는 부분인 동시에(제품명에 포함된 XDR은 Extreme Dynamic Range의 줄임말로 기존의 HDR 모니터들보다 더 넓은 다이내믹 레인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애플의 마케팅 용어이다), 실제로 이 모니터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차별점 중 하나가 HDR을 제대로 재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높은 명암비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간략하게 HDR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HDR 영상을 제대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디스플레이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HDR을 직역하자면 ‘더 넓은 다이내믹 레인지’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이내믹 레인지는 같은 조건에서 잡아낼 수 있는 가장 강한 신호와 가장 약한 신호의 비율이다. 시각(vision)을 기준으로 하면 동시에 인지할 수 있는 가장 밝은 영역과 가장 어두운 영역의 밝기 비율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SDR이라고 부르는 기존의 방식은 디스플레이 재현을 기준으로 가장 어두운 부분을 0.1 니트(칸델라 매 제곱미터), 가장 밝은 부분을 100니트로 하여 이 사이를 감마 규칙으로 나누어 밝기를 표현했다(8비트의 경우 256단계의 계조, 10비트의 경우 1024단계의 계조 등). 즉, 가장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비율(다이내믹 레인지)이 1000:1 정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눈은 별도의 적응 과정 없이 이보다 더 넓은 10000:1의 다이내믹 레인지를 가지고 있다(일부 연구에서는 이보다 더 넓은 다이내믹 레인지를 가진 화상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즉 SDR은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다이내믹 레인지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하지만 발전한 카메라, 디스플레이 기술은 각각 10000:1(13스톱~14스톱 사이)의 다이내믹 레인지를 촬영하고 재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으로 촬영된 데이터를 다루고 이를 바탕으로 화상을 재현하게 되면 이런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HDR은 카메라의 센서에 도착한 빛의 양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규칙(OETF), 전송/편집 과정에서 이 정보들을 잃지 않도록 해 주는 데이터 포맷, 최종적으로 배포된 전기 신호를 빛으로 바꾸는 규칙(EOTF)를 새로 규정했다. 즉 HDR은 높은 다이내믹 레인지로 촬영된 영상이 그 정보를 보존하면서 디스플레이에서 재현될 수 있도록 하는 규칙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사진: AMD; 기술적으로 일부 부정확한 내용이 있음

HDR이 그리는 이상이 완벽하게 구현된다면 우리는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모두 제대로 표현되는 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SDR 방식은 가장 밝은 부분(255)이 모니터가 현재 세팅에서 낼 수 있는 최대 밝기, 가장 어두운 부분(0)이 모니터가 현재 세팅에서 표현할 수 있는 최저 밝기로 나타나기 때문에 밝은 부분을 밝게 표현하려면 어두운 부분이 전체적으로 밝아지게 되고, 어두운 부분을 어둡게 표현하려면 영상이 전체적으로 어두워져야 한다. 하지만 HDR은 더 넓은 밝기 범위를 동시에 나타낼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영상의 밝은 부분을 밝게 표현하면서 동시에 어두운 부분은 어둡게 표현할 수 있다. 거기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돌비 비전 등의 HDR 표준은 단순히 다이내믹 레인지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더 넓은 색영역 등에 대한 내용도 포함하여 전체적인 시청 경험을 크게 끌어올려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최상급의 카메라와 디스플레이가 아닌 경우에는 HDR 영상을 제대로 촬영/재현할 수 없다. 그래서 HDR 규칙을 따라 만들어진 콘텐츠가 실제로 시청자에게 유의미한 시각적 혜택을 주기 위해서는 시청자의 디스플레이가 HDR을 재생하기에 적합해야 할 뿐 아니라 촬영부터 편집까지의 모든 단계에서 작업자들에게 적절한 장비가 필요하다. 애플의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이 시장을 공략한다.

 

굉장히 밝고, 굉장히 어둡다: 다이내믹 레인지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HDR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품고 있다. 이 글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애플이 공개한 정보를 바탕으로 프로 디스플레이 XDR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프로 디스플레이 XDR이 제품명에 포함하면서까지 강조하는 다이내믹 레인지 부분을 살펴보자.

사진: The Wireless Banana의 'How LCD TVs Work' 문서 중

LCD 디스플레이는 광원이 있고, 광원에서 나오는 빛을 편광판과 액정을 이용해 차단함으로써 동작한다. 각 픽셀마다 세 개의 독립된 액정이 빛의 투과를 결정하고, 각각의 서브픽셀에는 컬러필터가 입혀져 빛의 삼원색인 R, G, B의 세기를 독립적으로 통제한다. 우리가 흔히 ‘LCD로는 진짜 검은색을 구현하기 어렵다’라고 말하는 것은 LCD의 이런 특성에 기인한다. 일반적인 LCD 디스플레이가 동작할 때 광원은 항상 빛나고 있고, 이 빛을 모두 차단하는 방식으로 검은색을 구현한다. 그런데 기술의 한계로 LCD는 빛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빛을 최대로 차단하더라도 여전히 약한 빛이 새어나오기 때문에 LCD로는 진짜 검은색을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진: Acer

하지만 간단한 아이디어를 더하면 LCD에서도 진짜 검은색을 구현할 수 있다. 광원을 끄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전체 광원을 꺼버리면 화면의 내용이 보이지 않을 테니 광원을 여러 구획으로 나눠 구획별로 광원의 밝기를 다르게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기술을 로컬 디밍이라고 부르고, 현재 2000:1 이상의 명암비를 지원한다고 주장하는 LCD 디스플레이들은 대부분 이런 기술을 이용한다. 하지만 로컬 디밍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LCD 디스플레이는 광원의 밝기는 고정시켜두고 앞쪽의 액정에 흐르는 전류만 통제해서 원하는 세기의 빛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로컬 디밍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광원의 밝기를 구획별로 조절해야 하고, 여기에 맞춰서 액정에 흐르는 전류를 추가로 조절해줘야 한다. 또, 광원을 조절하는 것이 충분히 빠르지 않으면 어두운 화면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묘사할 때 빛이 한 발 늦게 물체를 따라가는 현상이 발생한다(영상 링크). 또, 디스플레이의 모서리에만 광원을 배치한 방식을 사용하거나 로컬 디밍 구역이 적으면 정확히 필요한 지점에만 빛을 켜 줄 수 없기 때문에 물체 주변이 전체적으로 밝아지는 ‘블루밍(blooming)’ 현상이 일어난다(영상 링크). 이런 블루밍 현상이 심하면 광점이 화면 여러 군데에 있는 콘텐츠를 볼 때 로컬 디밍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경우와 큰 차이가 없게 된다.

애플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로컬 디밍 존을 평면에 고르게 넣는 방식을 택했다. TV 옵션을 좀 본 사람이라면 ‘직하형 로컬 디밍’ 혹은 ‘Full Array Local Dimming’ 이라는 말이 좀 더 입에 붙을지도 모르겠다. 애플은 32인치 모니터에 무려 576개의 로컬 디밍 존을 넣었는데 이는 현재 출시된 모니터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일 뿐 아니라 대형 TV와 비교해도 많은 것이다. 현재 삼성 tv의 최상위 라인업은 QLED 8K 모델들인데, 이 모델도 480여개의 로컬 디밍 존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프로 디스플레이 XDR의 로컬 디밍 존이 얼마나 많은지를 실감할 수 있다. 다만 현재 발표된 제품으로 범위를 확장해 보면 CES 2019에서 발표된 ASUS의 ProArt PA32UCX 제품이 총 1152개의 로컬 디밍 존을 가지고 있어 애플의 프로 디스플레이 XDR과 비교하더라도 크게 앞선다. 하지만 아직 이 제품의 출시일자가 계속해서 밀리고 있고(봄  -> 6월 -> ?) 로컬 디밍 존의 컨트롤 등이 얼마나 뛰어날지 등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이 제품과 프로 디스플레이 XDR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추후 이 제품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보가 나오면 좀 더 집중적으로 내용을 조명해보겠다.

또 애플에 따르면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각각의 로컬 디밍 존과 각 픽셀의 액정을 컨트롤하기 위해 12개의 컨트롤러를 탑재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로컬 디밍 존과 위의 액정 컨트롤이 충분히 빠르게 이뤄지지 못하면 빛이 물체를 한 발 늦게 따라가는 현상이 생긴다. 애플은 이를 막기 위해 LED를 LCD보다 10배 이상 높은 재생률로 제어한다고 한다. 프로 디스플레이 XDR의 LCD가 60Hz(1초에 60번 제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프로 디스플레이 XDR의 로컬 디밍 존은 초당 600회 이상 제어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실제 제품이 출시되지 않아 자세한 실험을 할 수 없어 애플이 주장하는 이런 기술들이 얼마나 잘 동작하는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다만 밑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만 30여분정도 프로 디스플레이 XDR을 봤을 때는 위에서 언급한 현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하게 동작했다.

사진: 애플

이런 로컬 디밍을 통한 암부 컨트롤과 함께 높은 최대 밝기 역시 제대로 된 HDR 컨텐츠 확인에 중요하다.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높은 밝기의 LED를 사용해 최대 1600니트, 지속 1000니트의 밝기를 보여준다. 일반적인 모니터들이 대략 300니트 근처의 밝기를 가지고 있고, HDR을 지원하는 일부 모니터 중에서 1000니트의 최대 밝기를 가진 모니터가 있다고는 하나 대부분은 화면의 일부만 빛날 때 달성 가능한 밝기이며 일부 제품을 제외하면 1000니트의 밝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 이렇게 밝기를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는 전력소모와 발열 때문이다(프로 디스플레이 XDR의 1000니트 지속 밝기 역시 섭씨 25도 이하 환경에서만 보장된다).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별도의 팬으로 발열을 식히는 동시에 후면의 많은 부분을 맥 프로에서도 볼 수 있었던 독특한 격자무늬로 만들어 넓은 통풍 면적을 확보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1000니트, 1600니트의 밝기는 HDR 콘텐츠에서 해당 밝기로 표시해야하는 부분이 있을 때만 활성화된다. HDR 콘텐츠가 아닌 SDR 콘텐츠를 볼 때의 최대 밝기는 500니트로 제한되어 있다. SDR 콘텐츠의 경우 최대 밝기가 올라가면 영상의 모든 부분의 밝기가 같은 비율로 올라가기 때문에 최대 밝기가 너무 밝을 경우 원래 어두워야 할 부분까지 밝아지게 된다. 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같은 모바일 기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일정한 조명 환경에서 운용될 기기 특성상 화면이 이보다 더 밝아질 필요성이 낮기 때문에 이런 밝기 제한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밝은 LED와 잘 설계된 쿨링 구조로 최대 1600니트, 지속 1000니트의 굉장히 높은 밝기를 보여준다. 동시에 576개의 LED를 촘촘하게 배치한 직하형 로컬디밍 방식으로 암부 역시 굉장히 어둡게 표현할 수 있다. 촘촘한 로컬 디밍 존과 정밀한 제어 회로는 로컬 디밍 방식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블루밍을 최소한으로 억제했다. 이런 노력으로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LCD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높은 명암비를 얻을 수 있었다. 

 

좋은 작업용 모니터의 조건들

하지만 밝고 명암비만 높다고 좋은 모니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작업용 모니터가 되기 위해서는 넓은 색영역의 색을 정확히 표시해줄 수 있어야 하고 넓어진 색영역을 계조 손실 없이 보여주기 위해 깊은 색심도를 지원해야 한다. 또 화면 밝기와 색상이 모니터 전체 영역에서 최대한 균일해야 함은 물론이다. 애플은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다양한 기술을 투입해 이런 점들을 만족시키려 했다. 역시 디스플레이 품질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정량적인 측정은 제품이 출시된 뒤로 미루고 애플이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투입한 기술을 위주로 살펴보자.

프로 디스플레이 XDR를 소개하는 애플의 문서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576개의 LED가 내는 빛을 각각 측정하고 이를 보정한다는 것과 이렇게 생성한 라이트 프로파일을 각각 저장해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실제 생산 공정에서 똑같은 재료와 똑같은 방법으로 물건을 만들더라도 각각의 물건에는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는 각각의 디스플레이의 특성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QC, 보정이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훌륭한 품질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디스플레이들은 개별 디스플레이가 모두 측정되고 그 측정치에 따라 보정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개별 디스플레이 단위가 아니라 576개의 LED를 각각 보정하고 그 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전문가용 디스플레이 중에서도 유별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애플의 이런 노력은 프로 디스플레이 XDR이 굉장히 높은 수준의 색 정확도와 색과 밝기 균일도를 보여줄 것을 시사한다. 색 정확도에 대한 부분은 컨슈머 제품인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도 굉장히 높은 품질의 색 정확도를 보여주고 있기에 프로 디스플레이 XDR 역시 굉장히 높은 수준의 색 정확도를 보여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화면의 밝기 균일도는 상당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좀 더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LCD는 측면의 빛을 화면 전체로 퍼뜨리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균일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이런 역할을 하는 구조를 얼마나 잘 설계하느냐 역시 화면 균일도에 큰 영향을 준다). 위 그림은 27인치 LCD 모니터의 밝기 균일도 측정 결과이다. 모니터의 중앙 부분이 밝고, 끝으로 갈 수록 어두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니터의 가장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차이는 20% 정도로 눈으로 봤을 때는 4% 정도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지금 정확히 제품명을 밝힐 수 없지만 상당히 고품질의 디스플레이로 평가받는 디스플레이임을 밝힌다). 물론 제대로 된 모니터라면 균일도가 지나치게 낮은 패널은 QC 단계에서 걸러내는 방식으로 균일도를 통제하겠지만 모니터의 균일도를 어느 수준 이상으로 높이기는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각각의 LED의 밝기를 조절하게 되면 전체적인 디스플레이의 밝기 균일도를 더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 기대된다. 애플은 리플렉터, 렌즈등을 정밀하게 설계해 균일한 빛을 낼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또 인접한 LED가 중앙보다 적을 수 밖에 없는 가장자리의 LED의 빛을 증폭시킬 수 있는 마이크로 렌즈 어레이를 통해 전체적인 균일도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애플의 노력이 어느 정도로 완벽한 균일도로 나타날지, 실제 제품이 나오면 꼭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린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백라이트를 백색 LED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청색 LED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형광체의 위치를 LED에서 별도의 레이어로 분리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LCD 디스플레이의 LED 백라이트들은 청색 LED를 사용하고 청색 LED의 표면에 형광체를 도포하여 백색 LED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프로 디스플레이 XDR의 경우 청색 LED를 그대로 사용하고 반사판을 거친 후에 색상 변환 시트를 통해 청색광을 백색광으로 바꾼다. 이는 삼성의 QLED TV와 유사한 구조이다. 이에 더해 애플은 이런 구조가 1600니트의 최대 밝기, 1000니트의 지속 밝기를 달성하는 데 주효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전문가용 모니터의 필수 요소라고도 할 수 있는 10비트의 색심도를 지원해서 부드러운 계조 표현을 지원하고 P3 색영역을 지원한다.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Adobe RGB의 지원이나 더 넓은 색영역(Rec 2020 등) 대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큰 이변이 없다면 Adobe RGB의 녹색쪽 컬러를 제대로 재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 모니터의 타겟이 고해상도 HDR 영상제작 쪽인것과 무관하지 않다. 다르게 말하면 인쇄물을 보는 등의 작업이 주된 사용자라면 이 모니터의 매력이 상당히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반사율 부분이다. 화면 반사율이 높다면 우리 눈에 모니터에서 나온 빛이 아닌 다른 광원의 빛이 더 많이 도달하게 되고 정확한 이미지를 보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화면 반사율은 낮으면 낮을수록 좋다. 그런데 흔히 착각하는 것이 논 글래어 처리가 되어 있는 모니터는 반사율이 낮고, 그렇지 않은 모니터는 반사율이 높다는 것이다.

사진: overclockers.ru

여기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논 글래어’ 처리는 반사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표면에 울퉁불퉁한 재질을 추가하여 여러 방향으로 퍼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거울처럼 상이 맺히지는 않지만 원래 정반사 각도에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주변광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화면 전체적으로 밝기가 높아진다. 전체적인 화면 밝기가 높아진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명암비가 낮아진다는 의미로 화질에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또, 울퉁불퉁한 구조물은 디스플레이 밖에서 입사되는 빛을 여러 방향으로 퍼뜨릴 뿐 아니라 디스플레이에서 나오는 빛 역시 여러 방향으로 퍼뜨리게 된다. 이는 화면에 재현되는 이미지의 또렷함을 떨어뜨리게 된다.

즉 모니터를 살펴볼 때는 ‘반사율’과 ‘논 글래어’ 처리를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기본적으로 1.65%의 반사율과 글래어한 화면을 가지고 있다. 1.65%의 반사율이 정확히 어떻게 측정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상용 제품이 채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반사방지 처리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조명과 반사광이 제대로 통제된 환경이라면 기본 글래어 옵션을 사용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하지만 주변 조명과 반사광이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거나 국소적인 부분의 컬러 정확도가 극히 중요한 작업등을 하는 경우에는 $1,000를 추가하고 유리 표면을 미세하게 깎아내어 ‘논 글래어’ 처리를 추가할 수 있다. 애플은 별도의 코팅을 추가한 게 아니라 글래스 표면을 미세하게 깎아내어 ‘논 글래어’ 처리를 함으로써 ‘논 글래어’ 처리가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했다고 주장했는데, 실제 제품이 출시되면 이를 검증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애플

이 외에도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대한 이야깃거리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 중에서 필자가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한 것은 True Tone 기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True Tone 기술은 이미 아이폰, 아이패드 프로, 맥북 프로, 최신의 맥북 에어에 탑재되어 있고 닥터몰라에서도 여러 번 다룬 바 있다(링크). 이 기술은 우리 눈이 주변 조명에 적응한다는 데에 기반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발광하는 광원이 아니라면 주변 조명에 맞게 그 물체가 반사하는 빛도 바뀔테니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디스플레이는 자체적으로 발광한다. 다르게 말하면 디스플레이가 정확한 색을 표시해주더라도 우리는 주변광에 따라 그 색이 정확한 색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정확한 색을 보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컨슈머 기기에서는 이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직업적으로 정확한 색을 보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컬러 그레이딩과 같이 극도로 컬러에 민감한 작업을 할 때는 단지 정확한 색을 표시해줄 수 있는 디스플레이 뿐 아니라 벽과 바닥, 천장의 색이 중성 회색으로 마감되고 조명의 색온도와 밝기 등이 통제된 공간이 함께 필요하다. 이런 공간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은 고가의 디스플레이를 사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비싼 비용을 요구한다. 게다가 경우에 따라 저런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HDR 영상은 우리에게 도달할 때까지 촬영, 편집, 컬러 그레이딩, 마스터링, 배포 등의 다양한 과정을 거친다. 이 중에서 촬영 단계의 경우 시청 환경을 통제하는 것이 당연히 불가능하며 VFX나 편집 과정에서도 모든 작업자에게 통제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어렵다. 당연히 정확한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다른 조명 환경에서는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애플은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True Tone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애플에 따르면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는 전, 후면에 각각 주변광 센서가 탑재되어 환경의 주변광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이렇게 측정한 주변광에 따라 화이트포인트를 조절하게 된다. 이렇게 주변광에 맞춰진 화면은 주변광에 익숙해진 눈에 더 정확한 색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컨슈머가 아닌 전문가용 디스플레이에 이런 시도가 행해진 적은 없었다. 이런 기능이 완벽하게 동작한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겠지만 어설프게 동작한다면 오히려 부정확한 색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투입된 True Tone이 얼마나 완벽하게 동작하는지 역시 출시 후 프로 디스플레이 XDR을 리뷰할 때 자세히 살펴봐야 하는 부분이다.

그 외에도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HDR 동영상, HD 동영상, NTSC 동영상, PAL 및 SECAM 동영상, 디지털 시네마(각각 D65/DCI P3), 디자인 및 프린트, 사진, 인터넷 및 웹 등의 레퍼런스 모드를 지원한다. 다만 Adobe RGB와 P3보다 넓은 원시색역을 통한 BT.2020 등의 색영역 시뮬레이션 등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인쇄물과 정확한 매칭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대한 수요가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애플은 프로 디스플레이 XDR을 확실히 동영상 편집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메시지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아쉬운 점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밝기, 색 등이 모니터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는 콘텐츠가 있을 경우 이에 대한 경고 기능의 부재, 제한된 입력 단자, 마커 표시 기능의 부재 등 간단하지만 작업자들의 편의를 높여줄 수 있는 기능들이 빠져있다는 점을 꼽아볼 수 있다. 또 자체적으로 후드를 부착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 역시 감점 요소가 될 수 있다. 물론 아직 프로 디스플레이 XDR이 출시되기 전이므로 여기에 있는 내용 중에 실제로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포함된 기능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참고해주시길.

 

직접 본 이야기

사실 필자는 이미 프로 디스플레이 XDR의 실물을 보았다. 단순히 전시되어 있는 제품을 본 것이 아니라 엄격하게 통제된 환경에서(중성 회색으로 마감된 벽과 바닥과 천장에 조명은 낮은 밝기의 간접조명만이 켜져 있는) 타사의 제품들과 여러 화면을 띄워놓고 비교해 볼 기회가 있었다. 프로 디스플레이 XDR의 카운터파트로 선정된 제품들은 각각 델의 UP2718Q, 에이조의 CG319X, 소니의 레퍼런스 모니터인 BVM-HX310과 OLED 모델인 BVM-X300 V2 였다.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일반 모델과 나노 텍스처 글래스 옵션이 들어간 모델 두 가지가 있었다.

애플은 다양한 장면의 사진과 영상을 보여줬다. 델의 UP2718Q 모델과 에이조의 CG319X는 애플의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비해 많은 장면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에이조의 CG319X는 로컬디밍과 같은 별도의 기술이 투입되지 않은 LCD 모니터로 HDR 컨텐츠의 밝은 부분을 충분히 밝게 재현해내지 못했고 어두운 부분 역시 충분히 어둡지 못했다. 델의 UP2718Q의 경우에는 로컬 디밍 존의 개수가 384개로 애플의 프로 디스플레이 XDR보다 적은데다 로컬 디밍 존의 컨트롤 역시 프로 디스플레이 XDR보다 떨어져 블루밍 현상이 도드라져 보였다. 특히 화면 곳곳에 광원이 있는 사진이나 까만 밤 하늘에 커다란 달이 떠 있는 사진에서 둘의 품질 차이가 눈에 띄었다. 필자는 당시 애플 직원에게 달이 떠 있는 사진을 띄워줄 것을 다시 한 번 요청한 다음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띄워진 달 주변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델의 UP2718Q에서 보이는 블루밍 현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나노 텍스쳐 옵션이 추가된 프로 디스플레이 XDR과 기본 프로 디스플레이 XDR 사이에는 화질 차이가 크지 않았다. 추가된 비반사 처리는 가만히 있을 때는 알아채기 어려웠지만 모니터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자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국소적인 컬러에 극히 민감한 작업을 하지 않는 경우나 주변 조명이 너무 밝아 화면에 비치는 상이 작업을 방해하지 않을 경우라면 기본 버전의 프로 디스플레이 XDR 역시 충분히 뛰어난 품질의 화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국소적으로 정확한 색을 보는 것이 중요한 경우에는 1000불을 추가해 나노 텍스처 글래스 옵션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소니의 레퍼런스 모니터와 프로 디스플레이 XDR을 여러 번 번갈아가며 유심히 살펴봤지만 둘 사이에 화질적으로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OLED 모델인 소니 BVM-X300 V2 모델은 최대 밝기를 꾸준히 유지하지 못하고 어두워지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애플이 키노트에서도 언급했듯 소니의 레퍼런스 모니터는 25000~30000달러의 가격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프로 디스플레이 XDR이 레퍼런스 모니터에 버금가는 화질을 보여준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있는 대목이다. 정리하자면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비슷하거나 낮은 가격대의 모니터들에 대해 큰 화질 우위를 점하고 비슷한 화질의 레퍼런스 모니터들에 대해 가격 우위를 점함으로써 시장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격 논란에 대해

사진: 애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대한 내용들이 가격(특히 스탠드)에 가려져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높은 최대 밝기, 훌륭하게 컨트롤되는 576개의 로컬 디밍 존이 가져다주는 높은 명암비, 높은 해상도, 굉장히 뛰어난 수준일 것으로 기대되는 색 정확도 등을 감안하면 프로 디스플레이 XDR의 가격인 $4,999(일반 모델) / $5,999(나노 텍스처 글래스)는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이다. 논란이 되었던 프로 스탠드를 포함한 가격(각각 $5,998 / $6,998)으로 보더라도 여전히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만약 애플이 애초에 프로 스탠드를 포함한 가격을 발표했다면 스탠드 가격에 대한 조롱은 덜 받았을 지 모른다. 이미 글의 앞 부분에서 프로 디스플레이 XDR의 본체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것은 충분히 설명했고 이 단락에서는 스탠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먼저 애플이 왜 이런 판매 방식을 취했는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니터는 당연히 스탠드와 세트로 판매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상 가격의 모니터들은 여러 스탠드에 마운트할 수 있도록 VESA 옵션 역시 갖춰서 나온다. 제조사가 제공하는 스탠드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모니터와 주로 사용하는 스탠드는 한 세트로 본다. 이 둘을 분리하는 것은 꽤나 복잡한 작업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레퍼런스 모니터와 같이 주변 환경이 엄격히 통제된 상황에서 사용하는 제품은 이동할 필요도 없고 이동해서도 안 되는 물건이지만 그 아래 단계의 모니터를 사용하는 작업자들에게는 높은 이동성이 제품의 매력이 될 수 있다.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스탠드와 모니터를 자석으로 결합함으로써 별도의 도구 없이 혼자서도 쉽게 모니터를 탈착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이런 설계는 프로 스탠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VESA 마운트 어댑터에도 적용된다. 기존에는 VSEA 마운트 어댑터를 모니터에 탈착하는 방식이었다면 애플의 VESA 마운트 어댑터는 스탠드에 붙이는 방식이고, 이후 노출된 자석 부분을 프로 디스플레이 XDR과 결합하게 된다. 즉 VSEA 마운트 어댑터 스탠드와 모니터를 모두 들고다니는 게 아니라 작업공간마다 스탠드(프로 스탠드 혹은 써드파티 스탠드에 애플의 VESA 마운트 어댑터를 장착한 스탠드)를 두고 모니터만 떼서 이동 후 쉽게 붙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모니터와 스탠드는 일대일 대응 관계가 아니라 일대다 대응 관계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애플이 모니터와 스탠드(VESA 마운트 어댑터를 포함해서)를 따로 판매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거기에 True tone 디스플레이 등의 기능을 추가하여 단순히 이동성만 높인 게 아니라 다양한 환경에서 일관된 컬러를 볼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도 이런 견해에 힘을 싣는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런 목적으로 만든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이동을 위한 손잡이를 달아주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맥 프로와 유사한 디자인을 채택한 이상 견고한 스테인리스 스틸 핸들까지 달아주었다면 이런 점이 좀 더 극대화되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가격적인 측면에서 지나친 조롱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 스탠드는 제품을 사용하는 데 필수가 아니며, 사용자들은 얼마든지 합리적인 가격의 스탠드를 구매하고 VESA 마운트 어댑터를 장착할 수 있다. 여기서 애플이 디자인한, 프로 디스플레이 XDR과 잘 어울리는 프로 스탠드의 가치가 $800(기본 가격에서 VESA 마운트 어댑터 값을 뺀 금액)에 값한다고 생각하는 사용자만 프로 스탠드를 구매하면 된다. 필자는 모니터에 스탠드를 기본적으로 포함시킨 뒤 모니터를 $5,998 / $6,998의 가격에 판매하는 것 보다 현재 애플이 취하고 있는 판매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결론: 고해상도 HDR 편집 시장을 향한 애플의 출사표

사진: 애플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맥 프로와 함께 애플이 고해상도 HDR 편집 시장에 던지는 출사표이다. 애플은 파이널 컷 프로 X과 원통형 맥 프로의 헛발질로 영상 편집 시장의 주도권을 많이 잃었다. 이미 잃어버린 주도권을 평범한 방법으로 찾아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이에 애플은 현재 영상 편집시장의 메인스트림이 아닌 미래 영상 편집시장의 주류가 될 곳을 공략하기로 마음먹었다. 애플이 짚은 영상의 미래는 고해상도와 HDR이다. 고해상도의 HDR 영상을 편집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컴퓨팅 파워와 HDR 콘텐츠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필수적이다. 애플은 맥 프로와 애프터버너로 전자를, 프로 디스플레이 XDR로 후자의 위치를 채워넣으려 한다. 애프터버너는 고해상도 ProRes RAW 영상을 실시간으로 디코딩할 수 있는 전용 목적 하드웨어로 이런 전용 하드웨어를 탑재하지 않은 범용 컴퓨터에 비해 훨씬 빠르게 고해상도 영상을 처리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실제 고해상도, HDR 영상 편집 워크플로우의 효율을 크게 향상시켜줄 수 있다(링크).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576개의 직하형 로컬 디밍 존과 2,040만개의 픽셀을 정밀하게 제어해 LCD 디스플레이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1,000,000:1의 명암비를 달성했다. 지속 1,000니트 / 최대 1,600니트에 달하는 최대 밝기 역시 HDR 컨텐츠를 제대로 보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또 576개의 로컬 디밍 존을 각각 캘리브레이션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굉장히 높은 수준의 색 정확도와 균일도를 달성했을 것으로 기대된다. True Tone 디스플레이 기능은 전문가용 디스플레이에서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이다. 만약 이 기능이 완벽하게 동작한다면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통제되지 않은 조명 환경에서도 최대한 정확한 색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HDR 콘텐츠를 제대로 편집하기 위한 디스플레이로써의 자격을 갖췄다. 무엇보다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비슷하거나 낮은 가격대의 디스플레이보다 확실히 높은 화질을, 비슷한 화질을 가진 레퍼런스 모니터보다는 확실히 낮은 가격을 보여줌으로써 자신만의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했다.

물론 프로 디스플레이 XDR이 모든 면에서 경쟁 모니터를 압도하는 디스플레이는 아니다. 뛰어난 화질을 보여주는 것은 맞지만 Adobe RGB 색영역을 지원하지 않아 인쇄 작업이 주인 작업자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그 외에도 썬더볼트 3를 통해서만 영상 입력을 받는다는 점, 에이조, 소니 등 기존의 전문가용 모니터들이 탑재하고 있는 여러 기능들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 등의 단점은 분명 프로 디스플레이 XDR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프로 디스플레이 XDR은 레퍼런스 모니터를 대체하려는 모니터가 아니다. 컬러 그레이딩 룸 안에서, 극히 일부 인원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수준의 화질을 가진 모니터를 더 많은 작업자들이 더 다양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만약 애플이 맥 프로와 프로 디스플레이 XDR을 앞세워 아직 메인스트림이 되지 않은 고해상도 HDR 영상 편집 시장을 점령할 수 있다면 고해상도 HDR 영상이 표준이 된 세상에서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애플의 청사진대로 상황이 흘러갈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프로 디스플레이 XDR이 출시되면 이 디스플레이가 실제로 애플의 호언장담만큼 완벽한지 꼼꼼히 살펴볼 것을 약속드리며 글을 맺는다.

 

필자: Blue of ColorScale (홈페이지)

제조사가 알려주지 않는 디스플레이의 진짜 모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참조

• "아니 이걸 이 가격에?" 애플 프로 디스플레이 X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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