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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애플 퓨전 드라이브는 무엇인가? 또 어떻게 작동하는가?

퓨전 드라이브(Fusion Drive) 적용 과정

0. 애플 퓨전 드라이브는 무엇인가? 또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번글
1. 퓨전 드라이브 구성을 준비하다
2. 구형 맥에 퓨전 드라이브를 활성화하는 자세한 방법 소개
3. 퓨전 드라이브 사용기
4. 퓨전 드라이브 구성 후 못다한 이야기

들어가며

차세대 아이맥과 맥미니, 13인치 레티나 맥북프로, 아이패드 미니 소식이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발 빠르게 소개되고 있는데요, 새로운 모델에 대한 기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면에 개인적으로 관심어린 눈으로 지켜봤던 퓨전 드라이브(Fusion Drive) 기술은 국내에 자세히 정리된 기사가 없어 퓨전 드라이브가 어떻게 작동하고, 또 기존 기술들과 어떻게 다른지 문답식으로 간단히 풀어보았습니다.

먼저 퓨전 드라이브를 한 문장으로 간단히 정의하면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이하 SSD)*1와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이하 HDD),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이 두 저장장치를 원래 하나의 드라이브인 것 마냥 결합해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1:애플은 대외적으로 SSD라는 명칭보다 플래시(Flash)라는 명칭을 더 빈번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굳이 SSD와 HDD를 결합해서 사용하느냐? 무슨 이점이 있는가?

SSD와 HDD의 장단점이 극명하게 나뉘는 까닭입니다.

SSD의 성능은 HDD를 완전히 압도합니다. 파일을 훨씬 빠르게 저장할 수 있고, 또 훨씬 빨리 읽어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SSD가 일을 더 빨리 끝낼 수 있습니다. (컴퓨터 세계에서는 성능=시간절약=돈 공식이 성립합니다.)

하지만 같은 용량의 HDD에 비해 가격이 훨씬 더 비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요즘 10만원 정도의 금액으로 2테라바이트 용량의 HDD를 구입할 수 있는 반면, SSD는 그 1/16밖에 안되는 128기가 용량의 모델 밖에 구입할 수 없습니다. 순수하게 용량만으로 따지면 SSD가 HDD에 비해 16배나 비싼 셈입니다.

소비자는 두 가지 기로에서 고민합니다. 같은 돈으로 용량을 추구할 것인가, 성능을 추구할 것인가를 두고 말입니다. 둘의 장단점이 너무 극명하게 나뉘다 보니 선택이 쉽지가 않습니다. 또, 어떤 소비자들은 아예 이런 선택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보유하고 있거나 앞으로 운용해야 하는 파일들의 총 용량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SSD의 용량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고민을 덜기위해 이미 몇년 전에 하이브리드 드라이브가 출시되었습니다.

’둘 중 HDD를 구입하면 용량은 넉넉할지 몰라도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진다. 같은 가격으로 SSD를 사면 성능은 좋을지 몰라도 용량이 작다.

그래?

그럼 이 둘을 합쳐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시키면 고민이 줄어들겠네?’

해서 나온 것이 하이브리드 드라이브(Hybrid Drive)입니다.

즉, 기존 HDD 방식을 그대로 사용해 용량의 이점을 확보하면서도 SSD의 빠른 성능을 가능케 해준 NAND 메모리(전원이 차단돼도 내용이 지워지지 않는 비활성메모리)를 이 위에 얹어 전반적인 시스템 성능 향상을 꽤하는 방식입니다.

단 하이브리드에 탑재되는 NAND 메모리의 크기가 SSD의 용량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 SSD 단일 제품의 성능에 비견하기는 힘든 수준입니다. 하지만 저장장치 속의 모든 파일이 동일한 빈도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특별히 빈번히 사용되는 파일이 있는데, 이런 파일들을 최우선으로 메모리 영역에 불러들이기 때문에 NAND 메모리 영역이 작다하더라도 일부 작업에 한해 SSD에 버금가는 성능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드라이브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NAND 메모리 가격이 상당히 고가였지만 점점 가격이 떨어지고 있어 NAND 메모리의 용량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최근에는 기존에 사용하던 HDD에 애드온 형식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제품도 시중에 출시된 상태입니다. (예: OCZ Synapse)

애플의 퓨전 드라이브도 HDD랑 SSD를 결합하는 거라고 했는데 그럼 하이브리드 드라이브랑 같은 것 아닌가?

물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드라이브는 NAND 메모리를 일종의 버퍼 영역으로 사용합니다. 쉽게 말해, HDD에 저장되어 있는 파일 중 사용 빈도가 높은 파일을 NAND 메모리 영역으로 ’복사’해 넣습니다. ('캐시(Cache), 혹은 캐싱(Caching)한다'라고 하죠.)

그리고 100기가 용량의 HDD와 10기가 용량의 NAND 메모리가 결합해 있더라도 해당 하이브리드 드라이브의 전체 용량은 여전히 100기가입니다. 즉, 하이브리드 드라이브 시스템에서 NAND 메모리의 역할은 저장 공간이 아닌 성능을 높여주는 일종의 부스터(Booster) 역할만 맡게 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몇 년전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비스타(Vista)를 출시하면서 시스템 파일 일부를 HDD가 아닌 USB 메모리에서 불러오는 레디 부스트(Ready Boost) 기능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반면에 애플의 퓨전 드라이브는 입출력이 많은 파일은 SSD 영역에, 입출력이 적은 파일은 HDD 영역에 나눠서 저장합니다. 물론 어떤 파일이 HDD로 이동한 뒤라도 추후 접속 빈도가 높아지면 다시 SSD의 (빈도가 떨어지는) 파일과 자리가 교체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판단은 사용자의 간섭없이 운영체제 단에서 이뤄집니다. 한가지 눈여겨 볼 점은 쓰기 작업도 1차적으로는 무조건 SSD에 마련된 버퍼 영역에서 이뤄지고 추후 백그라운드 작업을 통해 앞서 말씀드린 파일 분류 작업이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단순히 파일을 불러오는 작업 뿐만 아니라 쓰기 작업도 SSD 시스템의 빠른 성능을 그대로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하이브리드 드라이브와 다르게 전체 용량도 두 드라이브 용량의 합으로 계산됩니다. 즉, 1테라 HDD와 128기가 SSD가 퓨전 드라이브로 기술로 결합되면 총 용량이 1.1TB테라가 됩니다. 3TB HDD 옵션을 선택하면 전체 용량은 3.1TB가 될테구요.

그럼 퓨전 드라아이브는 하이브리드 드라이브보다 RAID 어레이 기술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두 개 이상의 저장장치를 하나로 묶어주는 RAID, 혹은 RAID 어레이 기술은 컴퓨터 펌웨어 인터페이스(BIOS, uEFI, 맥의 경우는 EFI)나 RAID 칩셋 단계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컴퓨터 운영체제가 부팅된 시점에서 이미 하나의 드라이브로 인식됩니다. (OS 단에서 복수의 저장장치를 묶어주는 Soft-RAID 기술까지 파고들면 너무 내용이 복잡해지는 관계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서 운영체제가 이 묶음의 어디가 SSD 부분이고 또 어디가 HDD 부분인지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 빈도에 따른 파일 이동/복사을 할 수 없고 말 그대로 '아무데나' 파일을 저장합니다.

퓨전 드라이브로 묶인 저장장치들은 OS단(디스크 유틸리티)에서 구분되기 때문에 시스템은 파일의 입출력 빈도에 파일을 SSD와 HDD 둘 중 어디에 저장할 지 결정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럼 OS X이 아닌 부트캠프 윈도우는 퓨전 드라이브를 인식할 수 있나?

현재로서는 윈도우에서는 퓨전 드라이브가 지원 안 될 공산이 큽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퓨전 드라이브는 시스템 펌웨어 상이 아닌 OS X 상에서 구현되는 것인데 윈도우 자체적으로는 단순히 복수의 저장장치를 하나의 파티션으로 인식하는 SPAN이나 (앞서 말씀드린) Soft-RAID 정도만 지원할 뿐 파일 사용 빈도에 따라 저장장치를 선별하는 기능이 없습니다. 애플이 퓨전 드라이브 지원 드라이브를 만들어주면 일단은 가능은 하겠지만, 글쎄요. 지금까지 애플이 부트캠프 윈도우를 지원해오던 수준을 보면.. 요원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퓨전 드라이브를 설치한 맥은 부트캠프를 아예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몇 가지 우회적인 방법을 도입하지 않을까 추정합니다. 예를 들어 HDD를 파티션을 나주고 한쪽 파티션에 윈도우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 부분은 추후 퓨전 드라이브를 탑재한 맥의 배송이 시작되면 좀 더 내용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 애플 고객 지원 페이지에 Fusion Drive 문서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예상했던대로 HDD 일부 영역에 한해 부트캠프 윈도우를 설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단 퓨전 드라이브 구성이 SSD와 3TB HDD 구성일 때는 부트캠프 어시스턴트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 링크)

결론

‘기존의 저장장치를 대체할 새로운 저장장치를 구매하는 경우가 아닌, 즉 이미 아이맥이나 맥미니가 처음 출고되는 시기에 SSD와 HDD가 둘 다 장착되어 있다면 이미 성능과 용량은 확보된 것이 아닌가? SSD에다가는 OS X 설치하면 되고, 아이튠즈나 아이포토 보관함은 HDD에 넣어주는 거랑 성능이나 용량 면에서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이미 위 질문 자체가 왜 퓨전 드라이브의 필요한지, 어떤 부분이 유용한지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이번 이벤트가 있기 전부터 아이맥이나 맥미니를 애플에서 주문할 때 SSD와 HDD를 모두 탑재할 수 있었고, 또 직접 세컨드 베이(Second Bay, 혹은 옵티베이)를 맥북이나 아이맥에 설치해 SSD와 HDD의 장점을 동시에 누리고 계신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파일의 크기와 사용 빈도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시스템 내에서 분류하는 작업을 사용자가 ‘직접’ 하고 계실겁니다. 일단 SSD에 파일을 내려 받더라도 나중에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HDD 폴더 어딘가로 저장을 해두거나, 혹은 수~수십기가에 달아는 각종 라이브러리 파일을 사용자 홈폴더가 아닌 HDD나 외장하드로 분리를 시켜두실 겁니다. 하지만 퓨전 드라이브로 묶인 드라이브에서는 더 이상 이런 작업이 불필요해 집니다. 말 그대로 시스템이 ‘알아서 해줍니다(It just works.)'.

애플의 ’타임머신’과 맥북프로의 ‘그래픽 스위칭’, 'iCloud'와 같이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복잡한 설정을 사용자가 전혀 해 줄 필요가 없고, 또 주기적으로 관리해 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기능을 켜 놓기만 하면 '알아서' 작동합니다. 하지만 애플의 이런 ‘알아서 해준다’ 철학을 바탕으로 개발된 기능들이 항상 사용자가 의도한 대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퓨전 드라이브도 기술을 무조건 낙관적으로만 바라보기보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이런 저런 자료가 누적이 되어야 보다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종합해 보면, 

1. 퓨전 드라이브는 기존의 하이브리드 드라이브나 레이드 어레이와는 기술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2. HDD와 SSD의 장점을 극대화시켜줍니다.
3. 사용자가 SSD를 추가로 장착하기 위해 맥을 뜯을 필요도 없고, 퓨전 드라이브를 사용하기 위해 시스템에서 복잡한 설정을 해 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알아서 됩니다.

물론 퓨전 드라이브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SSD + HDD 조합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하더라도 단일 SSD나 SSD + SSD 보다는 성능이 더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SSD의 가격이 매년 절반 가까이 떨어지고 있고, 최대로 직접되는 용량도 매년 2배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SSD의 단점(가격, 용량)이 해소되는 시기가 올 것이고, 또 이런 시기가 오면 애플도 랩탑 제품에서 그러고 있는 것처럼 데스크탑 제품들을 올 플래시(All Flash) 체계로 전환할 것입니다. 퓨전 드라이브는 애플이 이런 전개를 해나가는 과도기에, 일종의 완충제 역할을 하기 위해 태어난 기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고
개괄적인 수준으로 퓨전 드라이브를 소개하기 위해 밑바탕이 되는 기술들, 예를 들어 서버에서 흔히 사용되는 Automatic Tiering, Block(혹은 File)-Level Tiering, OS X의 CoreStorage 프레임워크등의 설명은 생략했으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참조 자료
AnandTech
ArsTechnica
MacObserver
Apple Inc - HT5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