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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기나긴 아이패드 실험의 종착지 : 아이패드

사진 : Justin Sullivan / Getty image

 

2010년 봄, 애플의 한 스페셜 이벤트에서 최초의 아이패드가 발표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쇼파에 앉아 새로운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모습을 시연했으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시 아이패드는 PC의 미래로 보였고, 실제로 뜨거운 시장 반응 역시 이를 증명하는 듯했다. 아이패드 이전에 매우 작았던 스마트패드 시장은 아이패드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경쟁사 역시 아이패드의 대항마들을 내놓기에 바빴다. 아이패드는 아이패드 2 등의 후속작이 출시되면서 계속해서 판매량을 늘려갔고, 판매대수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금방 주도권을 잃어버렸던 스마트폰 시장과는 달리 스마트패드 시장에서 애플은 계속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쟁사들은 고가형 스마트패드 시장에서 아이패드와 경쟁을 포기하고 저가형 시장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패드의 승리는 점점 더 공고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아이패드의 판매량은 어느 순간부터 둔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스마트패드의 교체주기가 스마트폰에 비해 길다는 점과 함께, 이미 구매한 소비자 외의 소비자에게 외연을 확장하는 데 실패했다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애플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9.7인치 단일 라인업만으로 구성된 아이패드 라인업에 7.9인치 아이패드 미니를 투입했다. 아이패드 미니는 단지 화면 크기만 줄인 것이 아니라 화면의 네 모서리 부분에 골고루 존재하던 배젤 중 좌우 배젤의 폭을 크게 줄임으로써 화면 크기가 커진 것보다 더 큰 폭으로 전체 기기의 크기를 줄였다. 두께와 무게 역시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사진 : iMore

 

다만 애플은 두 라인업에 확실한 차별을 두었다. 아이패드 미니는 A6X 칩을 탑재한 아이패드 4와 같이 출시되었지만 두 세대 혹은 한 세대 반 전의 아이패드인 아이패드 2와 같은 A5 칩을 탑재했으며, 디스플레이 해상도 역시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아닌 아이패드 2와 동일한 1024 x 768 해상도를 채택했다. 즉, 애플은 아이패드 미니를 통해 기존에 애플이 다루지 못했던 '저가형 스마트패드' 시장을 노리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아이패드 미니는 꽤 괜찮은 판매량을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패드와 동등한 수준의 성능과 디스플레이를 아이패드 미니급의 휴대성으로 요구하는 사용자들 역시 많았다.

 

사진 : iGeeksBlog

 

애플은 이듬해 아이패드 에어와 동시에 아이패드 미니 2를 출시하면서 이런 수요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아이패드 에어는 아이패드 미니의 디자인을 그대로 물려받아 화면 크기를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인 크기를 줄였고, 두께와 무게 역시 큰 폭으로 줄이면서 아이패드 9.7인치 라인업의 휴대성을 대폭 끌어올렸다. 9.7인치 라인업의 아이패드의 휴대성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진 아이패드 미니 라인업에는 9.7인치 아이패드와 동일한 A7 칩을 투입하고, 화면의 해상도를 9.7인치 아이패드와 동일한 수준으로 올리면서도 가격은 여전히 9.7인치 아이패드에 비해서는 저렴한 수준으로 유지했다. 아이패드 미니 2는 동 세대의 아이패드와 대부분의 요소가 동일하지만 '화면의 크기'만 다른 제품이 됨으로써, 애플이 아이패드 미니 라인업에 좀 더 힘을 실어줬다고도 볼 수 있다(세부적으로는 디스플레이 품질 등에 추가적인 차이가 있긴 했지만 표면적은 스펙 상으로는 동일하다).

 

하지만 아이패드 미니 2가 9.7인치 아이패드와 비슷한 사양을 갖고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패드 미니를 선택하는 사용자들은 크게 늘지 않았다. 9.7인치 아이패드가 적당한 휴대성을 갖춘 시점에서 아이패드 사용자들은 더 작은 화면보다는 더 큰 화면을 선택한 것이다. 또, 2014년에 출시된 아이폰 6 시리즈는 4인치 화면을 버리고 대화면을 선택했다. 특히 아이폰 6플러스는 5.5인치 화면을 채택하면서 기존의 4인치 화면 아이폰이 아이패드 미니와 10배 이상의 크기 차이가 나던 것에서 그 격차를 4배 가량으로 줄임으로써 아이패드 미니의 매력을 더 떨어뜨렸다.

 

사진 : 애플

 

이런 상황에서 애플은 오히려 작은 화면이 아닌 큰 화면을 통한 차별화를 시도하려 했다. 아이패드 프로가 출시된 이후 알려진 후일담이지만 아이패드 프로의 최초 출시 예정일은 아이패드 에어2와 동일한 2014년 후반기였다. A칩 시리즈 최초로 트리플 코어를 탑재하고 강력한 그래픽 성능을 갖고 소개된 A8X는 사실 아이패드 프로를 위해 설계된 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애플 펜슬 등의 준비가 늦춰지면서 2014년에는 아이패드 에어 2만이 출시되었다. 아이패드 미니의 경우 별도의 라인업 업데이트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아이패드 미니 2가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아이패드 프로를 감안해 설계된 A8X는 엄청난 폭의 성능향상을 보였고, 이에 더해 아이패드 에어 2에는 여러 새로운 디스플레이 반사 저감 기술이 도입되는 등 아이패드 미니 2에 대해 성능 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차별점을 가졌다. 9.7인치 아이패드와 동일한 수준의 성능을 얻은지 한 세대만에 아이패드 미니는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간 것이다.

 

사진 : Gizmodo - ASUS Transformer Book T100TA

 

애플이 이렇게 여러 시도를 하는 도중에도 아이패드의 판매량은 꾸준히 떨어지고 있었다. 사실 이는 아이패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스마트패드 시장에서 아이패드는 여전히 압도적인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고가형 스마트패드 시장만을 따진다면 애플 독주라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패드를 상대로 나온 2-in-1 제품들의 판매량이 서서히 늘어나고, 회로기술이 발달하면서 랩탑 PC의 휴대성이 급격히 향상된 것 역시 아이패드에 있어서는 악재로 작용했다. 지난 몇 번의 애플 실적 분석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아이패드가 반등하기 위해서는 그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었다. 애플은 IBM과의 협력을 통해 기업 시장에서 아이패드의 사용을 늘리고, 꾸준히 교육 시장에 여러 솔루션들을 제공함과 동시에, 하드웨어적으로 아이패드 프로를 투입해 아이패드의 외연을 넓히고자 했다.

 

사진 : 애플

 

2015년 10월, 애플의 스페셜 이벤트에서는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 제품이 공개되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9.7인치 아이패드에 비해서도 77% 더 넓은 화면을 제공할 뿐 아니라, 컴퓨팅 능력 면에서도 당시 최신 아이폰인 아이폰 6s 탑재된 A9 칩의 CPU의 클럭을 올리고, 더 강력한 그래픽 유닛을 사용한 A9X 칩을 탑재했다. 또, 메모리 버스 폭을 늘림으로써 당대의 일반 컨슈머용 PC들 이상의 메모리 대역폭을 확보했다. A9X 칩은 실제로 아이패드 프로에 매우 강력한 컴퓨팅 성능을 제공한다(링크).  하지만 아이패드 프로의 진짜 차별점은 애플펜슬과 키보드를 연결할 수 있는 외부 연결 단자이다. 아이패드 프로는 터치 서브시스템에 애플펜슬을 인지할 수 있는 레이어를 통합했고, 별도의 외부 단자를 설치함으로써 별도 배터리와 블루투스 연결 없이도 키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애플펜슬은 애플이 만든 첫 세대의 스타일러스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스타일러스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성능을 보여준 바 있다(링크).

 

이런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전년동기대비 10%가량 줄어든 판매량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매출은 7% 상승했기 때문이다. 달러화 강세로 전체적으로 매출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아이패드 프로 라인업이 아이패드의 평균판매단가를 성공적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애플 2016 회계연도 3분기 실적발표 : 어둠 속에서 빛나는 희망 중(링크)

 

아이패드 프로의 출시에도 애플의 태블릿 판매량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하지만 아이패드 프로의 출시가 판매량 감소를 막지는 못했지만 아이패드의 평균판매단가를 높이는 역할은 톡톡히 수행했다. 애플의 2016 회계연도 3분기, 4분기 모두 아이패드의 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감소했지만 아이패드 프로 효과에 힘입어 아이패드 부문의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더 높아지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애플은 이런 현상을 확인하고, 아이패드 프로 라인업을 통해 고급형 아이패드 시장을 유지하기러 마음먹었으리라.

 

사진 : 애플

 

하지만 애플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상에는 좀 더 많은 아이패드가 보급되어야 한다. 애플은 아이패드를 좀 더 넓은 시장에 보급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인터렉티브 교과서를 쉽게 다운로드받아 볼 수 있는 iBooks 2.0과 인터렉티브 교재를 직접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iBooks Author의 공개에서부터 시작해서 학생들의 아이패드를 쉽게 통제하는 등 실제 수업 환경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교실’ 앱의 출시나 애플의 프로그래밍 언어인 Swift를 쉽게 배울 수 있는 Swift Playground등 교육 목적의 앱을 꾸준히 공개하는 것에서 애플이 여전히 아이패드를 교육용 시장에 보급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IBM과의 협력 등을 통해 기업 시장으로의 아이패드 진출 역시 애플에게는 중요할 것이다. 

 

사진 : 애플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시장에서 아이패드 프로는 너무 비싼 대안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교육용 시장의 경우 애플이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음에도 그 성과가 확실히 보이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는 아이패드의 가격이 비싸다는 것 역시 한 몫 했을 것이다. 실제 교육시장은 더 저렴한 크롬북 등의 경쟁자가 차지하고 있고, 애플로써는 ‘품질이 좋으면서도’ 적당한 가격의 제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애플이 이번에 내놓은 ‘아이패드’는 이런 목적들에 매우 잘 들어맞는다. 새 아이패드는 32GB 모델이 329달러, 한국 가격으로는 43만원으로 애플이 내놓은 가장 저렴한 9.7인치 아이패드이다. 최초의 아이패드가 499달러에 출시되었다는 것과 비교하면 170달러가 더 저렴해진 셈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A9칩을 탑재하고, 아이패드 에어 2보다도 더 밝은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또, 배터리 용량이 더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배터리 지속시간이 증가하는 등 ‘저렴한’ 제품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사진 : 애플

 

물론 애플은 새 아이패드와 아이패드 프로 9.7인치 제품 사이에는 확실한 선을 그었다. 새 아이패드는 아이패드 프로 9.7(과 아이패드 에어2) 보다 더 두껍고 무겁다. 물론 직접 들어봤을 때 그 무게의 차이가 체감될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는 엄연한 ‘다운그레이드’이다. 또한 A9X 칩을 탑재하고 있는 아이패드 프로 9.7과 달리 A9칩을 탑재했고, 아이패드 에어 2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향상된 반사 방지코팅 역시 사라졌다. 또, 화면 반사에 큰 영향을 주는 에어갭 역시 아이패드 에어만큼 존재하는데, 아이패드 에어 2나 프로를 사용하던 사용자들에게는 충분히 체감될만한 변화이다. 아이패드 프로 9.7 모델의 트루톤 디스플레이는 물론, 광색역을 표시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역시 탑재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애플이 새로 발표한 아이패드는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는 훌륭한 제품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상위 모델인 아이패드 프로를 제외하면 여전히 태블릿 시장에서 가장 성능이 높은 제품이라고 볼 수 있으며, 긴 배터리 시간과 아이패드 에어 1 수준의 적당한 휴대성 역시 겸비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하나가 특출나게 뛰어난 것도 없다. 아이패드 프로는 물론 에어 2에 적용된 기술들 중 상당수가 빠져나감으로써 아이패드 프로 라인업과의 차이를 분명히 했다. 즉, 새 아이패드는 아이패드 전선의 대부분의 영역을 담당하는 보병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다. 반대로 아이패드 프로 제품군은 최첨단 기갑부대와 전투기로 표현될 수 있겠다. 아이패드 미니 제품군은 이제는 전방이 아닌 후방의 예비부대 정도의 역할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애플의 기나긴 아이패드 실험의 종착지가 드디어 눈 앞에 있는 듯 하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아이패드이다.

 

P.S.1. 닥터몰라에서는 아이패드 라인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아이패드 5세대 제품에 대한 리뷰 역시 준비하고 있다. 곧 올라갈 간단한 개봉기와 아이패드 5세대의 성능, 배터리 지속시간, 아이패드 프로와의 차별점 등을 상세히 다룬 '아이패드 자세히 알아보기' 역시 대기중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P.S.2. 사족을 덧붙이자면 아이패드 프로는 ‘합리적인 가격’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리고 좀 더 과감한 시도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봄에 공개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아이패드 프로 시리즈들의 리비전이 없는 것은 다음 아이패드 프로 시리즈에 좀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필자: Jin Hyeop Lee (홈페이지)

생명과학과 컴퓨터 공학의 교차점에서 빛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DrMOLA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조
• 기나긴 아이패드 실험의 종착지 : 아이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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