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백투더맥 팀 (쿠도군, 닥터몰라)
애플이 자체 개발 프로세서를 장착한 맥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블룸버그가 2일(현지 시각) 보도했습니다. 애플은 최근에 이러한 프로젝트를 승인했으며,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첫 애플 프로세서 장착 맥은 빠르면 2020년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과연 이 소식은 사용자인 우리에게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간단히, 하지만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맥, 플랫폼 이주의 역사
애플의 자체 프로세서를 맥에 탑재한다는 소식은 사실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하드웨어만 내놓는다고 확 바뀌는 것이 아니고, macOS 자체뿐만 아니라 macOS용 앱을 만드는 써드파티 개발자들까지 사전 준비를 해야 하는, 상당히 기나긴 작업입니다. 이러한 작업을 “플랫폼 이주”라고 하죠.
물론, 애플이 이런 일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33년에 달하는 맥의 역사에서 두 번의 큰 플랫폼 이주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90년대 중반에 있었던 68K 프로세서에서 PowerPC 아키텍처로의 이주이고, 다른 하나는 2005년~2008년에 있었던 PowerPC에서 지금의 인텔(x86) 프로세서로의 이주입니다. 이중 최근에 있었던 인텔로의 이주를 살펴보도록 하죠.
* 2006년 1월 맥월드 당시 인텔 프로세서 웨이퍼를 건네주는 폴 오텔리니 인텔 전 CEO(오른쪽)와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 (왼쪽)
인텔로의 이주는 크게 세 가지 작업으로 나뉘었습니다. 첫 번째는 당연히 하드웨어였죠. 그나마 제일 쉽긴 하지만, 그래도 만만찮은 작업입니다. 애플이 판매하고 있는 모든 라인업을 새로운 인텔 프로세서가 탑재된 모델로 업그레이드해야 했기 때문이죠. (지금의 맥 라인업에서 애플이 4년 넘게 신경도 안 쓰고 있는 제품군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 지 실감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애플은 플랫폼 이주를 발표한 2005년 WWDC 이후 2006년 1월에 처음으로 아이맥과 파워북(이후 맥북 프로)을 인텔 프로세서로 이주시켰고, 그 해 8월에 파워맥의 새 모델(맥 프로)을 발표한 것을 끝으로 하드웨어 이주를 완료했습니다.
두 번째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운영체제가 새로운 아키텍처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하드웨어가 소용이 없죠. 하지만 애플은 이 부분을 이미 이주 발표 이전부터 해결해놓은 상태였습니다. macOS(당시 Mac OS X)는 스티브 잡스가 창업한 넥스트의 운영체제인 NeXTSTEP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당시 하드웨어 사업이 망하면서 넥스트는 1997년 애플에게 인수될 때까지 운영체제 판매에만 주력하게 됩니다. 이 사업을 위해 NeXTSTEP은 무려 네 개의 아키텍처를 동시에 지원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커널의 유연성은 인텔 이주에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미 인텔 프로세서의 x86을 어느 정도 지원하고 있었으므로 커널을 다시 써야 한다던가 등의 문제를 마주칠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심지어 애플은 2005년에 이주를 발표하기 전까지 비밀리에 그때까지의 모든 Mac OS X 버전(10.0~10.4)을 x86에서도 문제 없이 돌아가도록 해두었었고, 이주를 발표했던 2005년 WWDC 행사의 맥 관련 시연도 참가자들 몰래 펜티엄 4 기반의 해킨토시(?)로 구동하고 있었던 것을 키노트 중반에 이주를 발표하고 나서야 보여줘서 청중들을 경악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이 녀석이 맥 역사상 최초의 현대적 해킨토시가 아닐까 싶네요)
* OS X이 첫 출시한 이후 모든 버전이 인텔 프로세서에도 구동되도록 컴파일됐었다고 밝히고 있는 잡스. (애플 키노트 캡처)
세 번째는 개발자들입니다. 맥 앱을 개발하던 써드파티 개발자들도 x86 아키텍처에서 자신의 앱이 제 속도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애플도 인텔 프로세서를 장착한 맥이 나오기 전에 앱들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PowerPC 바이너리로 컴파일된 앱을 x86 아키텍처에서 구동해주는 로제타라는 일종의 에뮬레이터를 탑재했습니다. (로제타 지원은 이후 10.7 라이언에서 종료됩니다) 당연히 에뮬레이션이었기 때문에 네이티브 속도보다는 확연히 떨어졌지만, 어차피 인텔 프로세서가 당시 애플이 쓰던 PowerPC 프로세서보다 눈에 띄게 빨랐기 때문에 (처음으로 출시한 인텔 아이맥은 PowerPC 아이맥보다 2~3배 정도 빠르다고 애플이 홍보했습니다) 어느 정도 상쇄가 가능했습니다.
애플은 거기에 x86 아키텍처와 PowerPC 아키텍처를 동시에 지원하는 유니버설 바이너리를 준비해서 사용자층이 인텔로 이주하는 동안의 호환성과 성능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유니버설 바이너리로 컴파일을 하면 PowerPC와 인텔 모두에서 각자 아키텍처에 맞는 최적의 속도를 보장할 수 있었습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두 아키텍처를 동시에 지원하는 바람에 앱의 용량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겠죠. 거기에 로제타만 믿고 유니버설 바이너리 업데이트를 차일피일 미루던 일부 대기업(마이크로소프트라던가, 어도비라던가) 덕분에 전반적인 인텔 이주 작업은 처음으로 이주가 발표되고 3년 가까이 된 시점인 2008년 초가 되어서야 마무리됐습니다.
기술적으로 해볼 만한가?
사실, 애플이 맥 라인업을 ARM으로 이주시킬 것이라는 루머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애플이 아이폰, 아이패드에 직접 설계한 칩을 넣으면서 자체적으로 칩 설계가 가능함을 보여준 시점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루머죠. 하지만 처음에는 아이폰,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프로세서와 인텔 프로세서 사이의 성능 차이가 상당히 컸기에 이 루머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매년 큰 폭으로 AP의 성능을 끌어올려 왔고, 어느 순간부터 ‘데스크톱 레벨’의 성능을 모바일 기기에서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플은 아이패드 프로를 발표하면서 아이패드 프로의 컴퓨팅 성능이 대부분의 일반 컴퓨터에 비해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순수하게 애플의 주장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주장들을 애플의 마케팅용 미사여구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것도 사실에서 빗나가 있습니다.
현재 애플의 최신 아이패드, 아이폰에 탑재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인 A10X 퓨전, A11 바이오닉 칩과 인텔의 카비레이크 팬리스 저전력 프로세서(Core M의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중 가장 성능이 높은 Core i7-7Y75를 탑재한 맥북의 긱벤치 점수를 비교해보면 아이패드 프로에 들어가 있는 A10X Fusion과 A11 Bionic 프로세서의 싱글코어, 멀티코어 성능이 최신 인텔 프로세서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거나 오히려 앞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긱벤치의 경우 벤치마크 시나리오 구성이 단순한 연산 성능만을 비교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용 컴퓨터가 대응해야 하는 넓은 사용 시나리오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긱벤치가 다루는 단순한 연산 성능만을 놓고 봤을 때 이미 애플의 프로세서는 인텔의 프로세서에 근접하거나, 이를 넘어서는 성능을 보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ARM 명령어 세트 아키텍처는 태생이 저전력 환경을 노리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저전력 환경에서의 전력대 성능비에서는 인텔보다 뛰어날 수 있겠지만 높은 전력 소모가 가능한 환경에서 절대적인 성능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현재까지 ARM 명령어 세트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칩들이 활동할 수 있는 분야가 저전력에 적당한 성능을 요구하는 스마트폰, 태블릿 시장이었기 때문일 뿐, ARM 명령어 세트 아키텍처 자체의 한계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현대 CPU의 경우 사용하는 명령어 세트 아키텍처와 무관하게 내부적으로는 RISC에 가까운 구조로 동작하기 때문에 오히려 복잡한 명령어를 반드시 디코드(해석) 해야 하는 x86보다 기술적인 부채가 적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애플이 정말 자사의 맥 라인업을 ARM 칩으로 대체하고자 한다면 ARM 명령어 셋을 일부 확장해 인텔의 AVX 등에 해당하는 벡터 명령어와 이에 대응하는 하드웨어 회로를 추가하고, CPU 아키텍처를 확장하는 식으로 개별 코어의 성능과 좀 더 복잡한 연산에서의 성능 향상을 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파이프라인 스테이지의 간격을 조절하고, 제조 단계에서 더 낮은 밀도의 라이브러리를 채택하는 방식으로 더 높은 전력 소모를 가지지만 더 높은 절대 성능을 가지는 프로세서를 설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물론 직접 개발한 프로세서를 맥 프로까지 모든 맥 라인업에 확장시키면서 인텔 프로세서에 비해 유의미한 전력, 성능 우위를 얻기 위해서는 현재 인텔이 하는 방식보다 더 세분화된 아키텍처 설계가 필요할 것입니다. 적어도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혹은 지금의 터치 바가 없는 기본형 13인치 맥북 프로의 영역까지를 아우르는 아키텍처와 13인치 터치 바 맥북 프로 이상에 적용할 수 있는 아키텍처를 따로 설계하고, 각 제품에 최적화된 회로 설계 역시 수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아키텍처를 동시에 개발하고 관리하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서 많은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다만 애플은 2008년 P.A. 세미 인수 이후 현재 매우 강력한 프로세서 설계 팀을 보유하고 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금 보유고를 가진 기업이니만큼 의지가 있다면 시간이 걸릴 뿐 맥 제품군의 ARM 프로세서로의 이주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애플에게 큰 걸림돌이 될 부분은 바로 소프트웨어 쪽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미 macOS 자체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macOS를 기반으로 설계된 iOS를 통해 다윈 커널이나 코어 부분이 ARM 아키텍처에서 문제없이 구동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기 때문이죠. 다만 문제는 앱들일 겁니다. 지난 이주에 대한 이야기를 위에서 읽으셨다면 아시겠지만, 가장 오래 걸리는 부분이 바로 써드파티의 네이티브 아키텍처 지원이 될 것인데요. 아마 애플은 이번에도 써드파티 앱의 네이티브 지원이 완료될 때까지는 에뮬레이션으로 땜빵(?)을 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동안의 기술의 발전 덕에 지난 인텔 이주 때의 로제타보다는 성능의 손실은 더 적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서 손실을 더 줄이기 위해 초반에 나오는 애플 설계 프로세서에는 하드웨어 에뮬레이션을 위한 부분이 추가될 수도 있겠죠. 이게 다 애플이 직접 설계를 하기 때문에 애플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하드웨어를 적응시킬 수 있게 된 덕분입니다. 모든 걸 제어하고 있는 애플이기에 가능성이 높은 결정입니다.
이번 플랫폼 이주로 애플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13년 전, 애플이 PowerPC에서 인텔로 이주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성능, 발열, 비용 등의 여러 면에서 인텔로 이주하는 것이 이득이었기 때문입니다(당시 애플은 이것을 “1와트당 성능 측정치 (Performance per watt)”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위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플랫폼을 다른 명령어 셋 아키텍처를 가진 프로세서로 이주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장기적으로 큰 이득이 없는데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플랫폼 이주를 단행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즉, 우리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이유가 아니라 애플이 플랫폼 이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따져봐야 합니다.
* 인텔은 2014년에 출시한 5세대 이후로 공정을 줄이는데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Anandtech)
먼저 성능과 전력 소모면에서 이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 십수 년간 인텔은 시스템 반도체 미세공정의 우위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인텔의 기술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인텔이 과점하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엄청난 금액을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게 되면서 비-인텔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습니다. 이 시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TSMC, 삼성 등의 팹들은 적극적으로 기술 개발을 수행하면서 엄청난 금액을 투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재 시점에서 인텔은 칩 제조에 있어 지금까지 지켜왔던 기술적인 우위를 거의 상실했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발표된 8세대 코어 모바일 프로세서는 아직도 14nm 공정으로 생산되는 반면, 애플의 A11 바이오닉은 10nm 공정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텔은 단일한 아키텍처와 제조공정을 이용해 맥북에 들어가는 코어 M부터 맥 프로에 들어가는 제온 프로세서까지를 제조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연구개발 비용과 칩 설계 비용, 칩 생산 비용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장점을 주기 때문에 인텔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고객사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특히 코어 M의 경우 조금 더 높은 밀도의 반도체 라이브러리를 사용하고, 일부 아키텍처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비슷한 성능에 더 낮은 전력 소모량을 가지거나 혹은 비슷한 전력 소모량에 더 높은 성능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즉, 인텔과 비슷한 수준의 프로세서 아키텍처 설계 능력을 보유하고 자사의 확실한 제품 개발 계획에 따라 해당 제품의 전력, 성능 목표에 가장 적합한 선택을 할 수 있다면, 해당 제품 라인에서 인텔의 경쟁 제품에 비해 더 나은 성능 혹은, 더 낮은 전력 소모량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애플이 ARM으로 이주하는 것을 결정한다면 이는 전력 소모나 성능보다는 다른 이유일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위에서 꾸준히 언급한 것처럼 애플이 맥 라인업을 ARM으로 이주하는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면 적어도 해당 시점의 맥 제품군의 목표 지점에서 ARM 칩이 인텔 칩에 비해 더 나은 전력, 성능 특성을 보여주긴 하겠지만 그 차이는 그리 크지는 않을 것입니다. 애플은 그보다는 ARM으로의 이주로 더 나아질 전력, 성능 특성보다는 인텔로부터 꾸준히 구매해오는 칩의 단가 절감,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의 수직 통합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제품의 개발과 마케팅 측면에서의 이득에 더 큰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 12인치 맥북의 고급형에 들어가는 코어 i7-7Y75의 가격은 무려 393달러입니다. (인텔)
첫 번째로 비용에 대한 문제입니다. 인텔은 컴퓨터 프로세서 비용을 상당히 비싸게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시장 구조는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들은 직접 프로세서 아키텍처를 개발하고 이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는 데 드는 고정비용보다 인텔에게 꾸준히 최신 칩셋을 공급받는 비용이 압도적으로 싸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세서 아키텍처 개발과 제조에 대한 경험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필요한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개발도구까지 바꿔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회사의 경우 이 계산이 좀 달라지게 됩니다. IChunt의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은 A11 Bionic 칩을 TSMC로부터 대략 26달러 정도에 공급받고 있습니다. 이는 인텔이 공시한 코어 M 제품군의 가격과 비교하면 거의 10배 가까운 차이가 납니다. 물론 위에서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애플의 입장에서도 새로운 아키텍처를 개발하고, 맥을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주시키는 것은 엄청난 고정비용이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큰 비용을 치르더라도 충분히 많은 맥 제품군을 판매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애플은 비용을 줄여낼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최근 애플이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목표인 핵심 부품의 자체 기술 보유와도 맞물립니다. 애플은 2010년 A4로 시작하여, 이미 iOS 기기의 SoC(System-on-Chip) 기술을 완전히 보유한 상태입니다. 특히 A6 때의 자체 아키텍처 개발과, A7의 모바일 최초 64비트 전환 등은 애플이 이 분야에서 절대로 얕봐선 안 될 존재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거기에 애플은 지난 A11 바이오닉부터 iOS 내의 머신 러닝 작업을 대신 처리하는 전용 칩인 뉴럴 엔진과 이매지네이션 테크놀로지에서 수주해오던 모바일 GPU 대신 자체 GPU를 개발해 달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현재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는 퀄컴의 것을 대체한 자체 통신칩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이렇게 부품 기술의 사유화(?)를 통해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애플 자신이 필요한 부분에 특화된 전용 부품을 개발해 탑재하고, 거기에 소프트웨어를 딱 맞게 튜닝해 얹으면서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인텔의 부품을 사다 쓰면서 애플이 손해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맥북 프로의 16GB RAM 제한일 것입니다. 프로용 노트북을 지향하는 맥북 프로가 고작 16GB까지만 지원한다고 많은 비판이 있었는데요, 이 부분은 사실 애플의 문제라기보다는 인텔의 문제였습니다. 모바일에 어울리는 LP(Low-Power)DDR4 규격을 인텔이 아직도 지원을 안 하고 있는 것(인텔은 지난 3일에 발표한 8세대 코어 모바일 프로세서에 와서야 드디어 LPDDR4 지원을 추가했습니다)이 문제가 됐던 것이죠. 현재 맥북 프로가 사용하고 있는 LPDDR3은 16GB까지밖에 지원하지 못하는 관계로 애플은 울며 겨자먹기로 16GB까지만 탑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일반 DDR4를 썼다면 32GB도 지원이 가능했겠지만, 대신 안 그래도 욕을 먹고 있었던 배터리 시간에 더 큰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와 비교해, 애플은 이미 아이폰 7에 탑재된 A10 퓨전부터 LPDDR4를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애플이 맥에 이미 자체 프로세서를 썼다면, 맥북 프로의 32GB RAM은 이미 실현됐을 겁니다.
(관련 기사 - 맥북 프로가 메모리를 16GB까지밖에 올리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거기에 새로운 맥 라인업의 출시 시기를 거의 필수적으로 인텔의 프로세서 일정에 맞출 수밖에 없다는 문제도 존재합니다. 이 문제는 인텔이 최근 들어 애초에 발표된 일정을 계속해서 연기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는데요. 인텔이 규칙적인 프로세서 발표 일정에서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여기에 맞춰 규칙적으로 새로운 맥 제품을 발표하는 애플의 일정도 어그러졌습니다. 지난 3~4년 정도의 기간 동안 애플의 맥 제품군 업데이트 주기가 불규칙했던 건 여기에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와 비교해 애플은 이미 아이폰과 아이패드용 A시리즈 프로세서의 새로운 버전을 1년마다 꾸준히 내놓았습니다. 1년마다 나오는 새로운 아이폰에 맞춰서 새로운 프로세서를 내놓은 셈입니다. (A시리즈 뒤에 붙는 숫자는 아이폰의 세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최초의 애플 자체 프로세서인 A4를 탑재했던 아이폰 4는 4세대 아이폰이었고, 지금 아이폰 8 시리즈와 아이폰 X은 11세대인 셈입니다) 애플이 프로세서와 그 프로세서가 들어갈 기기의 개발 일정을 모두 제어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즉, 외부 기업 일정에 휘둘리지 않고 애플이 원하는 때에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것이죠.
사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인텔로의 이주 후 더 많은 맥 사용자층이 유입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아키텍처가 일반 PC와 같아지면서 윈도우를 구동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었는데요. Mac OS X 10.5 레퍼드부터 탑재된 부트캠프나 VM웨어, 페러렐즈 등이 제공하는 가상 머신 앱 덕분에 윈도우가 가끔씩은 필요한 사용자(특히 한국 사용자)도 안심하고 맥을 구매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사실 애플이 ARM으로 이주한다는 루머가 나오기 시작한 때부터 사람들이 제일 불안해한 부분이 이 부분이었습니다. “인텔로 이주한 덕분에 맥에서 윈도우를 쓸 수 있게 됐는데 이렇게 되면 윈도우를 못 쓰는 거 아니냐?”라는 질문이 많이 보였죠.
다행히도, 기술적으로 이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10을 ARM 기반의 아키텍처(스냅드래곤 835)에서 에뮬레이션 형식으로 구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애플의 새로운 부트 캠프도 비슷한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애플이 그냥 관리의 귀차니즘(...)을 이유로 실제로 부트캠프를 없앨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현재 애플에게 부트캠프는 큰 우선순위가 아닌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최소한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주로 실제로 사용자가 얻게 될 이득은 무엇이 있을까요? 물론 배터리 시간 개선이 가장 클 것입니다. ARM 기반 아키텍처를 사용하면 얻게 될 전력 효율 면의 이득은 위에 상술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일까요? 마이크로소프트가 막 내놓은 스냅드래곤 835 기반의 노트북이나 투인원 제품들은 20시간이 넘는 배터리 시간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비슷하게 역시 ARM 아키텍처 기반인 아이패드도 상당히 얇은 배터리에 10시간을 버틸 수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 더 큰 배터리를 12인치 맥북에 넣으면 이 두 제품에서 최소 15시간 이상의 배터리 시간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더 큰 배터리를 넣을 수 있는 맥북 프로라면 스냅드래곤 835 기반의 윈도우 노트북처럼 20시간에 가까운 배터리 시간을 기대해볼 만합니다. 또한, 애플이 프로세서까지 제어하게 되면 상술했듯이 지금의 맥보다 더 macOS에 최적화된 맥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이건 애플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겁니다. 물론 애플의 생태계 안에 남아있는 것에 만족한다면 말이죠.
또한, 아키텍처를 iOS와 공유하게 된다면, iOS 개발자가 macOS로 자신의 앱을 확장하는 것도 쉬워질 겁니다. 애플은 올해 WWDC에서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새로운 macOS / iOS 공유 앱 프레임워크를 통해 여기로 향하는 길을 닦기 시작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키텍처 이주까지 완료한다면 개발자 입장에서는 iOS와 macOS 두 플랫폼에서 거의 모든 코드를 공유하는 앱을 개발할 수 있으니 시간도 절약될 테고, 애플 입장에서는 맥 개발자 확충에 도움이 되겠죠.
(관련 기사 - (루머) 하나의 앱이 iOS와 macOS에서 모두 구동된다?)
역으로 생각하면, 한때 활발했던 해킨토시 커뮤니티는 인텔 맥에 대한 지원이 종료되면 사라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ARM 기반의 맥이 나오면 macOS가 당연히 어느 정도의 프로세서 인증을 할 것이고, 해킨토시는 이 인증을 당연히 통과하지 못할 테니 macOS 구동은 고사하고 설치조차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말 운이 좋아서 ARM 아키텍처 프로세서를 어디서 구해온다 하더라도 말이죠) 특히 현재 아이맥 프로에 들어가 있는 T2 보조 프로세서의 보안 부팅 기능을 생각하면 비슷한 기능을 메인 프로세서 안에 직접 넣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애플이 하드웨어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올수록, 자신이 원하는 하드웨어에 맥을 구동하려 하는 사용자층이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미래...
지금까지 애플이 만약에 플랫폼 이주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애플과 사용자 입장에서 어떤 이득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의 대부분은 추측이며, 아직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애플도 이 이주를 발표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며, 발표한 이후에도 실제로 이주가 완료되기까지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겁니다.
이 이주가 일어난다고 가정한다면, 지금은 맥을 사지 않는 것이 좋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애플은 여전히 향후 2~3년간은 인텔의 새로운 프로세서를 활용한 맥을 선보일 것이며, 인텔 이주 당시의 전례를 생각한다면 이주가 완료된 후에도 몇 년 동안은 인텔 맥을 지원해줄 겁니다. (2006년에 라인업을 바꾼 후, 애플은 2009년에 10.6 스노 레퍼드가 나올 때까지 PowerPC 맥을 계속 지원했습니다) 게다가 이번 이주가 인텔 이주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애플의 인텔 맥 지원 종료도 인텔 이주 때보다 훨씬 뒤에 이루어지겠죠. 즉, 이 질문은 애플이 실제로 이주를 발표할 때쯤 되어서야 다시 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일단 지금은 이번에 나온 인텔의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한 쿼드 코어 13인치 맥북 프로와 헥사 코어 15인치 맥북 프로를 기대해 봅시다.
참조
• Apple Plans to Use Its Own Chips in Macs From 2020, Replacing Intel -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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